참혹한 전쟁의 기억, 희생과 헌신…참전용사의 구술을 확보하라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7-21 14:22수정 2021-07-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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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용사 구술영상구축사업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참전용사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들의 구술 영상을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19일 오전 서울용산구 전쟁기념관 유엔실에서 참전용사 류영봉 님 구술영상 촬영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내 유엔실. 휴관일인 월요일이라 고요한 유엔실에서 어르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옛날 이야기처럼 흘러나왔다. 그는 이야기 도중 당시를 떠올리는 듯 자주 눈을 감았다.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 27일~12월 13일)에서 부상당한 뒤 영하 35℃의 혹한 속에 얼어 죽은 동료들 이야기를 할 땐 여러 번 침을 삼켰다. 6·25전쟁 당시 카투사(KATUSA·미군 배속 한국군) 1기로 참전한 류영봉 씨(89·예비역 이등중사)는 담담하려 애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1950년 8월 대구에서 등굣길에 징집된 뒤 유엔군 미7사단 17연대 소속 의무병으로 참전했다.

“1950년 11월 21일 우리 부대가 압록강 혜산진에 도착했을 때 얼어붙은 압록강 얼음을 깨서 신나게 먹었습니다. ‘이제 남북통일이 되는구나.’ 감격에 겨워 미군들과 얼싸안았습니다. 미군들은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며 기뻐했습니다. 그 꿈은 3일만에 산산조각 났습니다.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후퇴할 길이 모두 막힌 겁니다.”

19일 오전 서울용산구 전쟁기념관 유엔실에서 참전용사 류영봉 님 구술영상 촬영
류 씨는 이날 전쟁기념관이 오픈 아카이브 구축 사업의 하나로 진행 중인 참전용사 구술 영상 녹화에 참여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과 현재의 심정, 후대에 남기는 메시지 등을 1시간 여에 걸쳐 구술했다. 그는 이날 기자에게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고 참전했다가 아직 시신도 못 찾은 동료들이 많은데 나만 살아남아 부끄럽다”며 울먹였다. 이어 “국민들이 동료들의 희생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생전에 내가 겪은 일을 최대한 알리려 한다”고 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6·25 참전용사 중 생존자는 지난달 현재 6만9000여 명. 1년 전 8만4000여 명이었던 것과 비해 크게 줄었다. 참전용사 평균 연령이 이미 90세를 넘긴 만큼 ‘전쟁 유산’으로써 이들의 구술 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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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6·25 70주년이었던 지난해 7월 구술에 참여했던 전쟁 초기 대한해협해전 영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최재형 전 감사원장 부친)은 이달 8일 별세했다. 그는 구술 영상을 통해 “후대들이 행복하게 살 땅,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 달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

19일 오전 서울용산구 전쟁기념관 유엔실에서 참전용사 류영봉 님 구술영상 촬영
참전용사의 구술은 6·25 전쟁사의 빈곳을 촘촘히 메워줄 주요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남기는 구술은 이들의 마지막 모습은 물론 평생 전쟁을 안고 살아간 참전용사들의 변화된 생각을 보여줄 전쟁 유산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기념관 측은 지난해 최영섭 대령을 포함해 육해공군 창설 주역이자 참전용사인 3인의 구술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그해 10월 이를 기념관 오픈 아카이브에 공개했다. 올해는 19일까지 류 씨를 포함한 4인의 영상을 녹화했다. 각각 10~15분 분량의 영상으로 제작될 이 구술 자료는 올해 11월 공개된다. 기념관 측은 추후에도 구술 영상 녹화 및 아카이브 구축을 계속해 글로는 전할 수 없는 참전용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쟁 유산으로 남긴다는 계획이다.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참전용사들이 인생의 종착점에 접어들었을 무렵 구술을 받는 건 전쟁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들이 어떤 존재로 사회에 남아있는지를 기록해 후대에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전쟁유산 확보 작업”이라며 “이들의 구술을 듣는 건 전쟁 당시 전쟁의 주체였다가 점점 잊혀진 이들을 국가가 끝까지 예우하는 노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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