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100년 만에 재연된 ‘스페인 독감’ 공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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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청기사/로라 스피니 지음·전병근 옮김/552쪽·1만9800원·유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감염병을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해당 주제에 관한 책을 찾는 독자도 늘었다. 역사와 감염병 간 관계를 추적한 고전,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의 세계사’는 2020년에 전년 대비 판매가 약 10배 증가했다. ‘질병이 바꾼 세계사’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등 2020년에 출간된 신간도 여럿이다. 스페인 독감에 관해 다룬 ‘죽음의 청기사’도 감염병에 관한 주목할 만한 책이다. 네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첫째, 앞날개와 뒷날개를 생략했다. 외국의 페이퍼북과 달리 한국 책은 으레 앞날개에 저자 소개를, 뒷날개에는 추천평이나 다른 책에 관한 정보 등을 싣는다. 앞뒤 날개를 책갈피 대신 사용하는 독자가 있긴 하지만, 책 꼴이 망가지는 걸 기피하는 다수의 독자에게 책갈피로서의 쓸모는 없다. 저자나 다른 책 소개는 책 속 본문에 넣어도 될 일이다. 게다가 책날개가 있는 부분이 다른 쪽보다 더 두껍기 때문에 여러 권의 책을 꽂으면 불편하다. 수직으로 쌓으면 무너지고, 수평으로 꽂으면 어느 순간부터 힘을 빡 줘야 하는데 뺄 때 뻑뻑하다. 제작비도 조금 더 든다고 한다. 유유 출판사가 책날개를 생략하기로 한 선택이 이해가 간다.

둘째, 표지다. 어두운 무채색으로 그려진 해골 병사가 섬뜩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헤비메탈 음반 재킷에서 보던 그림이다. 한편으로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뭉크의 작품 세계에 스페인 독감이 큰 영향을 끼쳤다.

기존에 나온 역사 책이 여러 감염병을 다뤘다면 이 책은 스페인 독감에만 집중했다는 점이 세 번째 특징이다. 그간 스페인 독감은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제1차 세계대전 때보다 많은데도 말이다. 스페인에서 발생한 감염병이 아닌데도 왜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는지, 이 질병으로 몇 명이 죽었는지 사망자 추정치도 편차가 크다.

우리 역사에도 스페인 독감은 큰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은 일본과 비교하면 감염률은 비슷했으나 사망률은 2배 높았다. 취약한 사회 구조 탓이다. 스페인 독감은 식민지 통치의 모순을 드러냈다. 감염병은 1919년 3·1운동을 추동한 여러 배경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점은 1세기 전 일인데도 지금 이야기로 읽힌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19와 스페인 독감은 1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있지만 발생과 전개 모습이 놀랍도록 유사하다. 기원을 둘러싼 혼란, 각국의 봉쇄 전략, 의료진의 노력, 병에 관한 음모론, 백신 불신, 종교적 믿음의 쇄신 등등.

이 책을 다 읽고 덮고 나면 희망이 보인다. 스페인 독감이 그러했듯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언젠가 끝날 테다. 질병이 드러낸 다양한 취약점을 개선하고 무너져버린 시스템을 복원함으로써 인류는 한발 더 나아갈 것이다. 스페인 독감을 겪으며 공공 의료가 한층 발전하고 경제가 호황을 맞았으며 출산율이 증가했듯 말이다.

손민규 예스24 인문MD
#재연#스페인 독감#코로나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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