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속엔 ‘가짜뉴스 DNA’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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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제랄드 브로네르 지음·김수진 옮김/400쪽·1만7000원·책세상

저자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광범위한 인터넷 사용이 정보 시장에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뒤엉켜 진실을 가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는 인터넷 초창기부터 광범위한 인터넷 사용이 정보 시장에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뒤엉켜 진실을 가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984년 11월 자일 싱 인도 대통령이 암살당했다는 소문이 뉴델리에 퍼졌다. 상인들은 상점 셔터를 내리고 직장인들은 일찍 퇴근해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폭력 사태에 대비했다. 이 공포는 저녁 뉴스 시간에 대통령 궁에서 암살 사건이 발생했지만, 희생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정원사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가라앉았다. 이 거짓 정보는 얼마 전에 일어난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의 비극과 당국의 뒤늦은 확인이 맞물려 8시간의 공포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가짜 뉴스가 어떻게 사회 속으로 파고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를 분석했다. 가짜 뉴스의 문제점에 접근한 실용서는 아니다. 여러 사례와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가짜 뉴스라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가를 체계적으로 다뤘다. 저자 제랄드 브로네르는 프랑스 파리 디드로대 사회학과 교수로 ‘신념의 제국’ ‘극단적 사고’ 등을 출간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시장 자유화의 문제점을 비판해 왔다.

책 제목의 ‘쉽게 믿는 자’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 이들은 잘 믿지 않는 자들이다. 이들은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유산인 과학과 상식보다는 음모론에 휩싸이며 ‘신념’을 믿는다. 이 책에서 신념이라는 단어는 과학에 반하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정보에 오염된 생각들을 의미한다.

1950년대 말 집단 히스테리가 미국 시애틀을 휩쓸었다. 시민들은 만나기만 하면 한 가지 기이한 현상을 이야기했다. 앞 유리창에 작은 균열이 있는 자동차가 시내에 점점 많아진다는 소문이었다. 이 미스터리는 소련의 핵실험으로 산성비가 내려 유리가 파손됐다는 낙진 이론과 대규모 고속도로 정비 과정 중 발생한 산성 방울들이 원인이라는 주장으로 확대됐다. 급기야 주지사의 요청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는 불과 몇십 km 떨어진 도시들의 차량을 검사한 결과 간단히 사라졌다. 균열은 여러 도시에서 비슷한 수치로 발견됐고, 이는 차량 노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시애틀 사건의 원인은 과학적 조사가 아닌 확증 편향으로 초래된 ‘검사 전염병’이었다.

저자는 불행하게도 우리 민주주의의 내부에 가짜 뉴스가 번성할 수 있는 DNA가 심어져 있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글을 쓰고 출판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이후 표현의 자유는 다양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훼손할 수 없는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표현할 권리와 의심할 자유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번성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줬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정보시장의 자유화다.

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과학과 상식에 기반한 지식의 민주주의로 가자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려면 표현할 권리는 물론이고 그 권리에 대한 의무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책의향기#쉽게 믿는 자들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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