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파도가 삼킨 소수언어… 3개월에 한개꼴 사라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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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 인터넷 통해 영어에 익숙… 34만명 쓰는 아이슬란드어도 위기
청소년 4명중 1명 모국어 어려워해… 유네스코 “7000여개 중 절반 소멸”

“언어가 없는 국가는 심장이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영국 웨일스의 속담이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도구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공동체 문화와 세계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영국 의회 소속 언어평등연구원인 질 에번스는 지난달 26일 의회 잡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디지털 시대가 유럽의 소수언어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이 속담을 소개했다. 웨일스어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취약 언어’ 중 하나다.

영어와 프랑스어 등 세계 주요 언어 위주로 구성된 인터넷 콘텐츠가 유럽 소수언어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의 대부분은 주요 언어로만 이용할 수 있어 소수언어를 쓰는 공동체의 젊은 세대들이 모국어보다 영어 등의 주요 언어에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7일 주요 언어 위주인 인터넷 환경이 아이슬란드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옛 노르드어를 아직까지 지키고 있는 아이슬란드는 외래어도 철저히 자국어로 다듬어 사용할 만큼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각별하다.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4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700년 전 문헌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런 아이슬란드도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인터넷을 통해 영어로 서비스되는 영화 등 각종 영상 콘텐츠를 접해 온 아이슬란드 젊은 세대들이 모국어보다 영어를 더 익숙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15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4명 중 한 명은 이미 모국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화폐 가치가 낮아지며 아이슬란드가 인기 관광지로 부상한 것도 한몫을 했다. 아이슬란드의 음식점이나 상점에서 영어가 사용되는 것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유네스코는 2100년까지 전 세계 7000여 개 언어 중 절반이 소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언어학자 데이비드 크리스털에 따르면 3개월에 하나씩 소멸 언어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 발달은 언어 소멸에 기름을 부었다. 하와이대의 언어학 교수 게리 홀턴은 최근 시사주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하나의 언어를 잃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고유한 시각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했다.

에번스 연구원은 글로벌 인터넷 서비스에 소수언어를 포함하려는 노력이 언어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자동 번역, 음성 인식, 텍스트 음성 변환 등의 기술에 다국적 언어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양한 언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옥스퍼드대 출판사는 ‘옥스퍼드 글로벌 언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말레이어, 로마어 등의 언어를 전자사전으로 출판하고 있다. 사용 인구가 많은 언어부터 시작해 언젠가는 소수언어까지도 인공지능(AI)이 인식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디지털 파도#소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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