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아가씨’ 원로 작곡가 김인배 별세, 향년 86세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7일 1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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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아가씨’ 등 히트곡을 쓴 원로 작곡가 겸 트럼펫 연주자 김인배(86)씨가 6일 오후 11시17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연주자로 활동을 시작해 KBS, TBC 라디오 악단장을 거치며 ‘빨간 구두아가씨’를 비롯해 ‘보슬비 오는 거리’ ‘그리운 얼굴’ 등 400여 곡을 작곡했다. 편곡 작품은 2500여 곡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트럼펫 연주 음반을 발표한 명성에 걸맞게 ‘철(鐵)의 입술을 가진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1932년 9월25일 평북 정주에서 4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유년 시절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놀기를 좋아했다. 정주초등학교 3학년 때 당시 귀했던 진짜 나팔을 조부에게 선물 받은 뒤 음악 행로가 시작했다.

으뜸화음 중심의 단순한 음계들인 ‘도-솔-도-미’만 구사할 수 있는 ‘4음 신호 나팔’이었지만 학교 운동장에서 집합이나 행진 때 구령을 대신한 놀라운 체험이 이후 오랜 연주 생활 동안 자신감의 바탕이 됐다.

함흥 영생중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처음 트럼펫 연주를 시작한 그는 정주중 4년 때 더 넓은 곳에서 제대로 된 음악 활동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단신 월남한다. 1948년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 때였다.

1950년 4월 수도경비사령부 군악대로 입대하자마자 6·25 전쟁이 발발했다. 낮에는 육군 교향악대, 밤에는 후생사업의 하나로 스윙밴드를 조직해 미8군 무대에 나섰다. 이때 안병서, 김동진 같은 현대음악가들을 사사했고 동시에 스윙음악도 접했다.

1957년 전역 후 하우스밴드에 들어가 연주 활동을 시작하며 동시에 부인 장영희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어 김호길악단에 입단, ‘LCI’에서 ‘방랑시인 김삿갓’ 등 대중음악 연주를 시작했다.

1958년부터는 레코딩 작업에도 참여했다. 특히 작곡가 박시춘의 영화음악 연주가 주를 이뤘다. 이후 KBS 교향악단원으로 활동하다 1963년 KBS 라디오악단장을 맡는다. 하지만 연주만으로 생활을 꾸리기 쉽지 않던 그는 작곡도 시작했다.

데뷔 작품이 HLKA 드라마 주제가 ‘삼별초’다. 가수 한명숙이 노래한 ‘삼별초’는 사극 주제가였으나 팀파니나 관현악을 노래에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어 ‘너는 말했다’ ‘하늘 끝 바다 끝’ 등 다양한 기법을 멜로디에 접목해 가요 폭을 넓힌 것으로 평가받는다.

‘즐거운 한나절’ ‘KBS 그랜드쇼’ ‘노래의 메아리’ ‘가요콩쿠르’ ‘이 밤을 즐거이’ 등 방송 시그널 뮤직을 비롯해 드라마 주제가 ‘진달래꽃은 봄이면 핀다’ ‘딸이 좋아’ 등 히트곡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4년에는 직접 자신의 음반사인 ‘텔 스타(TELL STAR)’ 레코드사를 설립했다. 자작곡 음반 두 장을 발표했다. 태명일의 ‘빨간 구두 아가씨’, 조애희의 ‘사랑해봤으면’, 한명숙의 ‘그리운 얼굴’, 박재란의 ‘소쩍새 우는 마을’, 조애희의 ‘내 이름은 소녀’ 등 히트곡이 대거 실렸다. 작사가 하중희와 콤비를 이뤄 만든 작품들이다. 이 노래들은 방송가에서 제법 히트했으나 음반은 제작 과정 미숙으로 재킷이 휜 채 제작, 판매에는 실패했다.

이후 오아시스 전속 작곡가가 됐다. 텔스타에서 발표한 노래들을 재출반했다. 김상국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성재히의 ‘보슬비 오는 거리’ 등 빅히트곡도 냈다. 특히 ‘황금의 눈’은 드러머 출신 가수 배호를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게 해준 곡이기도 하다.

1973년부터 동양방송(TBC) 라디오 악단장을 맡았고 1980년 언론 통폐합과 함께 한국방송 라디오악단장으로 직책을 이어갔다. 1994년 퇴임 후에는 청록회관, 영동호텔 등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간다. ‘공군전우회’(2005), ‘복음성가’(2006) 등 노년까지 작곡 활동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화관문화훈장 등을 수훈했다. 1987년에는 방송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받은 대통령 문화포상금 전액을 전남 완도 금당초등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 연주사’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3대가 음악가로 활동한 집안이다. 유족으로 부인과 2남1녀를 남겼는데 장남 대우씨는 KBS 관현악단장이다. 외손자 김필은 엠넷 ‘슈퍼스타K 6’ 준우승자 출신 가수다.

대중음악가 박성서씨는 “‘도-솔-도-미’ 4음 신호 나팔로 시작한 김인배의 소리는 어느덧 갖가지 선율로 파생됐다”면서 “홀로 사선을 뚫고 단신 월남한 집념은 이제 ‘음악가 3대’라는 영예로, 그 줄기를 힘차게 뻗고 있다”고 봤다.

빈소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9일 오전 6시. 02-2227-7500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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