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악단 한국인 악장, 이젠 놀랄 일도 아니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해외 오케스트라 빛내는 한국인들

프랑스인 남편과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일해 온 박지윤은 올 9월 프랑스 명문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프랑스인 2명과 함께 최종 면접에 올랐다. 7년간 악장을 경험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본인 제공
프랑스인 남편과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일해 온 박지윤은 올 9월 프랑스 명문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프랑스인 2명과 함께 최종 면접에 올랐다. 7년간 악장을 경험해 좋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본인 제공

누군가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자 단원들이 기립한다. 지휘자인가 했더니 바이올린을 들고선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는다. 알쏭달쏭한 그의 정체는 제1바이올린 파트 리더인 ‘악장’. 오케스트라의 반장이자 심장이라 불리는 자리다.

최근 한국인 연주자들이 해외 오케스트라 악장 자리를 휩쓸고 있다. 박지윤(33)은 올해 초 프랑스 명문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선임돼 9월 취임한다. 김수연(31)은 올 1월부터 독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서, 이지윤(26)은 지난해 9월부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서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악장으로 뛰는 윤소영(34)과 이지혜(32)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 폴크스오퍼 심포니의 유희승, 미국 뉴욕필의 권수현 등은 부악장으로 일한다.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악장은 오케스트라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리더다. 지휘자의 곡 해석에 따라 단원들을 통솔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김유나 서울시향 홍보마케팅 팀장은 “악장은 지휘자와 100명 가까이 되는 단원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음악성은 물론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라고 말했다.
김수연(왼쪽 사진), 이지윤 등 최근 국내 연주자들이 대거 해외 오케스트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본인 제공
김수연(왼쪽 사진), 이지윤 등 최근 국내 연주자들이 대거 해외 오케스트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본인 제공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 악장 열풍이 부는 이유는 뭘까. 2011년부터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일해 온 박지윤은 ‘순발력’과 ‘소통능력’을 악장의 자질로 꼽았다. 그는 “맨 앞에서 지휘자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해 연주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멀리 떨어진 팀파니나 목관 파트 수석들과도 눈짓으로 교감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뭣보다 중요한 건 음악적 자질이다. 이정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53)은 “지휘자와 단원에게서 신뢰를 얻으려면 음악을 잘 이해해야 한다.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은 특히 솔로 연주를 할 일이 많아 음악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한 음악계 관계자는 “악장이 솔로 파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단원들이 못 미더워 한다. 지휘자는 지휘를, 악장은 솔로 파트를 잘해야 뒷말을 듣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인 악장이 대거 탄생한 배경은 클래식계의 성장과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세계적 기량을 갖춘 국내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솔리스트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수석과 악장 등의 장점에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솔리스트로서 한계를 느낀 이들이 단독 활동을 병행하기 좋은 오케스트라 악장 자리를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지윤은 “해외 오케스트라는 보통 악장을 2, 3명 두고 있어 개인 활동을 하기 좋다. ‘트리오 제이드’ 멤버로 활동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했다.

악장도 오디션으로 선발하지만 보통 지휘자와 합을 맞추는 과정이 중요하다. 아무리 뛰어나도 해당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합격하기 힘들다. 해외 오케스트라 악장의 연봉은 단원들의 3∼5배 수준. 미국에선 악장이 후원자 관리까지 도맡기도 한다.

악장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시대적 흐름은 있다. 한 해외 오케스트라 악장은 “예전엔 ‘왜 동양 여성을 굳이 악장으로 뽑느냐’는 문의 전화가 오곤 했다. 지금은 그런 일이 드물다”며 “악장은 나이와 관계없이 음악성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한국인 연주자#해외 오케스트라 악장#박지윤#김수연#이지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