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군주의 ‘도자기 집착’… 어느 쪽이 중국 자기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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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왕이 사랑한 보물’展
獨도공시켜 만든 복제자기 비교 전시… 상아-금-은-청동 세공품 화려함 자랑

17, 18세기 중국 청나라 경덕진에서 생산된 청자병(왼쪽)과 마이센 복제품.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7, 18세기 중국 청나라 경덕진에서 생산된 청자병(왼쪽)과 마이센 복제품.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서세동점(西勢東漸)이 본격화된 18세기에도 중국 도자기에 대한 유럽의 열등감은 여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의 가장 안쪽 전시실에 들어서면 흥미로운 공간이 나온다. 17, 18세기 중국 청나라에서 수입한 도자기와 이를 복제한 독일 마이센 자기를 일대일로 비교 전시한 것이다. 대접부터 청자, 화려한 채색 자기에 이르기까지 얼핏 보면 어떤 게 중국 자기인지 쉽게 분간이 안 간다. 왕명에 따라 중국 자기를 본떠 채색한 뒤 유약을 입힌 옛 독일 장인들의 솜씨가 대단하다.

이번 전시는 17세기 말∼18세기 초 독일 작센지방 선제후 겸 폴란드 왕으로 군림한 ‘강건왕 아우구스투스(1670∼1733)’의 수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꿈꾼 강건왕답게 왕의 권위를 뽐내는 화려한 바로크 공예품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예술에 대한 그의 집착은 16세기 초부터 유럽 왕가와 귀족들을 사로잡은 중국 도자기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나란히 전시된 마이센 자기는 아우구스투스가 1710년 독일 작센지역에 세운 유럽 최초의 도자기 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17세기 초 은으로 제작한 ‘여성 형상의 술잔’(왼쪽)과 1587년 상아로 만든 ‘타원형 뚜껑이 있는 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7세기 초 은으로 제작한 ‘여성 형상의 술잔’(왼쪽)과 1587년 상아로 만든 ‘타원형 뚜껑이 있는 잔’.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러나 100% 복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불가능할 터. 빛이 투과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기를 얇게 구워내야 하는 중국의 등롱(燈籠·등불을 켜는 기구)은 마이센 자기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얇은 자기는 가마 안에서 높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깨지기 십상이다. 독일 장인들은 3년 넘게 실험을 거듭했지만 결국 환한 빛을 비추는 중국의 등롱을 재현하는 데 실패했다. 전시실에선 둔탁한 빛만 간신히 통과시키는 마이센 등롱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유럽의 저력을 결코 무시할 순 없다. 상아와 금, 은, 청동 등으로 만든 정교한 세공품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다. 특히 18세기 작센 선제후들이 상아를 물레에 돌려 세공하는 공예기술을 필수로 익힌 사실이 흥미롭다. 기술을 천시하지 않고 몸소 체험한 바로크 군주의 모습에서 동서양의 차이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달 26일까지. 1688-0361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서세동점#도자기#복제 자기#국립중앙박물관#왕이 사랑한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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