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붙인 장미처럼 향기로운 생명의 詩 피울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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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이 된 문정희 시인

문정희 시인은 기자가 건넨 빨간 장미를 보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그는 중국, 일본의 시인들과 함께 주요 작품을 모아 내년 봄 ‘장미 시집’이라는 동인지를 출간할 예정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문정희 시인은 기자가 건넨 빨간 장미를 보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그는 중국, 일본의 시인들과 함께 주요 작품을 모아 내년 봄 ‘장미 시집’이라는 동인지를 출간할 예정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그는 노래했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를 따라’고. 장미는 황홀한 생의 순간을 의미한다. 문정희 시인(70), 그의 이름이 진짜 장미가 된다. 일본 조사이국제대가 7년간 공들여 개발한 장미 품종에 ‘문정희’라는 이름을 붙여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23일 문 시인을 만났다.

“자그마한 꽃송이의 흑장미였어요. 내 이름을 딴 장미가 끊임없이 피고 지며 생명을 이어간다는 건 무한한 축복이자 행운이에요!”

트레이드마크인 머플러를 멋스럽게 두른 그의 두 뺨은 살짝 상기돼 있었다. 이 대학이 그동안 개발한 장미에 붙였던 이름은 프랑수아즈 사강(프랑스), 안네 프랑크(유대계 독일인) 등이다. 모두 생명의 존엄과 평화를 아름답게 쓴 작가들로, 문 시인도 같은 이유로 선정됐다. 그의 대표 시선집인 ‘지금 장미를 따라’는 일본에도 소개돼 사랑받았다. 동명의 시는 그가 멕시코 여성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집에서 받은 영감을 풀어냈다.

그는 “요즘 최고의 순간을 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보내는 환호 때문이 아니라 내면의 흔들림과 갈증이 잦아들고 헛것을 추려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 70세를 맞아 스스로에게 줬다는 선물은 여행 정도를 떠올렸던 기자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정확한 언어를 쓰겠다는 다짐이에요. 돌이켜 보니 시를 쓸 때 과장하고, 미화하는 수식어를 많이 사용한 것 같아요. 정직하고 정확한 언어를 써야 시 정신이 늙지 않을 테니까요.”

고교 시절 미당 서정주 시인이 발문을 쓴 시집 ‘꽃숨’(1965년)을 출간하며 ‘천재 소녀 시인’으로 불렸고, 여성의 억압된 삶을 앞서 토해내는가 하면 뜨거운 에너지와 삶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들로 우뚝 선 그가 아닌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9개 언어로 번역된 시집 12권은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근래에 받은 상만 해도 스웨덴의 유명 문학상인 시카다상(2010년)을 비롯해 육사시문학상(2013년), 목월문학상(2015년), 올해 선정된 삼성행복대상 등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문학적 성취를 이루려면 한참 멀었어요. 시를 쓴 뒤 다시 읽어 보면 화살이 과녁의 정중앙을 뚫은 것 같은 전율이 오지 않을 때가 태반이에요. 다만, 지금도 잉크가 마를 새 없이 계속 시를 쓰고 있다는 그 자체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매일 오전 7시에 일어나 곧장 책상 앞에 앉는다. 전날 쓴 글을 고치고 새 글을 쓴다. 집 안 곳곳에 생각날 때마다 빼곡히 글을 써 놓은 냅킨, 메모지 등이 꽉 차 있다. 책은 손에서 떠나는 법이 없다. 요즘은 시리아 시인인 아도니스의 시집, 독일 출신의 미국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고 있다.

“나이를 먹으며 걱정되는 건 딱 두 가지예요.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 호기심이 줄어들지 않을까. 자기 복제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기도 해요. 우리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며 잃어버린 가치인 생명을 밀도 있는 시어로 이야기하며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문정희 시인#장미 시집#시집 지금 장미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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