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56>사물과 상품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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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뱅 보쟁, ‘오감’
뤼뱅 보쟁, ‘오감’
 정물화는 17세기 독립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서구 사회는 근대로 이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새로운 관심사인 세속적 즐거움과 전통 가치인 도덕적 삶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했지요. 정물화는 이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면서도 감각적 행복보다 도덕적 삶을 환기했습니다.

 제아무리 귀하고 값비싸다고 해도 그림 속 정물들은 모두 죽은 사물입니다. 만개한 꽃은 대지가 아닌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진귀한 과일은 나무가 아닌 식탁에 놓여 있습니다. 생명의 땅을 떠난 사물들은 더 이상 꽃 피우고, 열매 맺을 가능성이 제거된 존재들이지요. 생명력을 소진한 사물들을 한군데 모아 놓은 정물화는 인생무상과 죽음을 깨닫게 하는 데 적합한 미술 장르였어요.

 뤼뱅 보쟁(1610∼1663)도 ‘오감’이 즐거운 볼거리로 소비되길 원치 않았습니다. 격조 높은 정물화로 삶과 죽음에 관한 준엄한 교훈을 전하고자 했지요. 그런데 그림 속 정물들은 화가 의도와 어떤 관계도 없는 평범한 실내 소품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각각 정물에 담긴 뜻은 심오했습니다.

 정물화 속 악기와 악보는 귀를 즐겁게 합니다. 한편 위태롭게 쌓인 카드와 질감이 부드러운 지갑은 손끝을 만족시키지요. 또한 빵과 포도주는 우리 혀를 자극하고, 꽃과 거울은 우리 코와 눈에 즐거움을 줍니다. 그림 속 정물들은 우리 오감에 흡족함을 주는 것들이군요. 그럼에도 정물화는 쾌락적 삶의 충족 요건을 넘어 세속적 생의 위험을 성찰하게 합니다.

 화가는 한때는 감각을 사로잡았으나 언젠가 끝날 연주와 게임을 그림 앞쪽에 위태롭게 배치했습니다. 반면 영원히 영혼을 밝힐 빵과 포도주 성찬과 세 송이 카네이션이 상징하는 거룩한 사랑을 뒤편에 두었지요. 관객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려는 것일까요. 그림 속 거울은 욕망 세계와 절제 세계 어느 곳도 비추지 않은 채 걸려 있습니다.

 집 근처에 문을 연 창고형 할인매장을 방문했습니다. 구매자 오감을 간단히 제압한 공산품들이 빌딩처럼 서 있는 광경에 압도되어 매장 입구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회원증 발급 후 들어갈 수 있고, 구매 물품과 영수증을 확인 대조한 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던 참이라 결정은 수월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입로를 몇 번이나 놓쳤습니다. 매장 안 상품들에 그림 속 정물들이 겹쳐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습니다.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정물화#뤼뱅 보쟁#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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