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자화상은 거울 속 나인가, 생각 속 나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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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나를 담다: 한국의 자화상 읽기/이광표 지음/332쪽·1만8000원·현암사

장욱진(1917∼1990)의 유채화 ‘자화상’(1951년). 저자는 “인물을 배경에서 분리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처절한 회의와 성찰을 담았다”고 썼다. 현암사 제공
장욱진(1917∼1990)의 유채화 ‘자화상’(1951년). 저자는 “인물을 배경에서 분리함으로써 자아에 대한 처절한 회의와 성찰을 담았다”고 썼다. 현암사 제공
 고3 때 봄 어느 밤. 큰 거울과 이젤을 방에 갖다 놓고 내 나신을 그렸다. 나르시시즘 놀이는 아니었다. 그림은 붉고 거칠고 어두웠다. 그러고 며칠간 가출한 뒤 돌아와 친 학기중간시험 대부분 과목에 백지 답안을 냈다.

 나는 그때 왜 벌거벗은 내 모습을 그렸을까. 자화상을 그리는 행위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썼다.

 “자화상을 그리는 사람은 과연 누구를 그리는 것일까. 정말로 자신의 모습인가. 제3자의 눈에 비친 모습, 그러니까 거울에 비친 모습 그대로 그리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일까.”

 지은이는 동아일보 기자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과 국문학을 공부한 뒤 근현대 고미술 컬렉션 주제의 논문으로 문화유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머리말에 “10여 년 전부터 자화상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자화상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작품을 감상하고 관련 자료를 읽고 생각을 정리할수록 궁금증은 더 커져 갔고 모르는 것이 계속 나타났다”고 적었다.

 소제목과 본문 곳곳에 적잖은 의문문이 쓰인 건 그 때문일 거다. 좀처럼 확언이 없다. 눈앞에 놓은 그림과 작가의 속사정을 파고드는 데 유용하다 여긴 사유의 도구를 그러모아 차곡차곡 정리한 뒤 각자 생각해 보기를 제안한다. 시선의 초점은 차츰 자화상 주변부의 배경으로 흐른다.

 “얼굴 밖에서 주인공의 내면과 심리를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시선과 포즈, 배경과 소품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배경과 소품은 화가 자신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제목에 밝힌 ‘읽기’의 의미는 정교한 주석에서 찾을 수 있다. 출처 밝힘 없이 뻔뻔스레 짜깁기한 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보기 드문, 더불어 읽어 나가기 편한 주석이다. 완숙한 안목을 전하는 도구로써 읽은 바를 적절히 엮어내는 기술과 얄팍한 견문을 분별없이 과시하는 인용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뒤표지를 덮은 뒤 녹 먹은 이젤을 찾아 꺼냈다. 이번엔 옷을 입고 그릴 생각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그림에 나를 담다#이광표#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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