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쌓인 감정의 잔해 모아 모아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승영 설치미술전 ‘Reflections’

작가는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 중앙에 놓인 나침반(원 안)에 대해 “인간 삶의 불안한 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sohn@donga.com
작가는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 중앙에 놓인 나침반(원 안)에 대해 “인간 삶의 불안한 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sohn@donga.com
 지하 전시실 입구를 아예 벽돌로 막아놓았다. 뭐지. 벽 복판에 애매한 크기로 갈라놓은 틈새를 통해 낡은 나무판자로 덮어놓은 전시실이 보인다. 휴대전화 플래시를 비춰 봐도 그 이상 뭔가 또렷이 눈에 들어오는 건 없다. 눈 대신 귀를 대어 보니 ‘스윽스윽’ 바닥을 쓸어내는 비질 소리가 들린다. 무섭거나 섬뜩하기보다는 묘하게 평온하고 고요한 소리다.

 12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승영 작가(53)의 개인전 ‘Reflections’. 김 씨는 이 설치작품 ‘쓸다’에 대해 “마음속에 쌓인 감정의 잔해를 쓸어 모아 버리는 소리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슬픔이나 상처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런저런 감정의 덩어리들이 작가인 나에게는 무엇보다 강한 작업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익대에서 조각을 공부한 김 씨는 1990년대부터 물, 이끼, 숯, 돌, 낙엽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조명, 음향, 기계장치를 맞물린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년 특별전에도 놓여 있는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 사이에서 시선 이동을 거듭해온 작가의 관심사를 축약해 보여준다.

 1층 전시실의 ‘뇌’는 1980년대 할리우드 공포영화 ‘헬레이저’를 연상시킨다. 얽힌 쇠사슬 뭉치로 뇌 모양을 만들어놓고 두통 앓는 조조의 머리처럼 무수한 침을 박아놓았다. 그러나 도무지 풀어낼 길 없는 고뇌를 끌어안은 듯한 그 시커먼 뇌 덩어리를 얹은 접시저울의 바늘은 ‘0’을 가리키고 있다. “갈수록 우리 사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하는 법을 잊어가는 듯하다. 자주 쓰지 않는 근육이 차츰 퇴화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말하는 욕망을 억누르면 발언의 기술도 퇴화한다. 일단 소리를 내어놓고 나면 고민과 망설임의 무게는 예상보다 보잘것없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김승영#설치미술#reflections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