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독자서평]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은 우리에게서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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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함께하는 독자서평]
◇피로사회/한병철 지음/김태환 옮김/128쪽·1만 원/문학과지성사

※지난 일주일 동안 292편의 독자 서평이 투고됐습니다. 이 중 한 편을 선정해 싣습니다.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의 ‘피로사회’는 후기 근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철학, 심리학, 경제학, 경영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성과사회, 피로사회, 활동사회의 모습을 간결하고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왜 사회와 경제가 발전해가면서 우리가 겪는 불안과 우울증세는 점차 늘어만 갈까? 저자는 통제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를 지배하는 핵심 조동사가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부정성’의 사회에서 이제는 ‘긍정성’의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과 자유의 확장은 보이지 않는 벽을 더욱 두껍게 만들어버렸다. 능력과 기회만 있다면 꿈꾸는 어떤 것도 성취할 수 있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권유는 우리에게 원하는 곳으로 오르기 위해 쉼 없이 발버둥치라고 압박한다. 하지만 발버둥칠수록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피로만 쌓여간다. 저자는 말한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할 수 있다’로 대변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가학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고,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은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서 나오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나 꿈은 이 사회의 메커니즘 상부에 위치한 존재, 흔히 기득권이라 일컬어지는 부류에 의해서 정해진 이상향이다. 그들이 정해놓은 길을 좇을수록 결국 우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늘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군분투는 기득권층만 더욱 배 불리는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로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가 저자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피로와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관점을 새롭게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 놓은 질서가 반드시 옳다는 맹목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타인이 규정한 이상에 다다르지 못한 자기 자신을 한탄하고 외로운 가해자로 살아갈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통해 성과사회, 피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임용섭·서울 도봉구 방학동
#피로사회#한병철#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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