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조사 끝내고 현장교육하러 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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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조사委서 12년간 활동…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

12년간 일제 강제 동원 조사 현장에서 활동한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 지금은 각 지역의 강제 동원 현장을 견학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12년간 일제 강제 동원 조사 현장에서 활동한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 지금은 각 지역의 강제 동원 현장을 견학하며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제부터는 서류와 연구실 안에 갇혀 있던 역사에서 나와 강제 동원의 쓰라린 현장을 연구할 겁니다.”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실상을 조사 및 연구하기 위해 2004년 11월 출범한 ‘대일(對日)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6월 말 12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위원회에서 12년 동안 줄곧 활동해온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56)은 4일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위원회는 총 34만 건에 이르는 강제 동원 피해 조사 자료를 만들어 전산화 작업을 마쳤다. 6200억 원에 이르는 강제 동원 위로금도 피해 유족에게 지급했다. 위로금 전달 건수로 헤아리면 7만6000건이 넘는다.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등 일본 주요 그룹 계열사를 포함해 지금도 존재하는 일본 회사 103곳이 전범 기업임을 입증하는 성과도 냈다.

12년간의 위원회 활동은 반전의 연속이었다고 정 학회장은 회상했다.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정 학회장은 2014년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강제 동원 피해자 28만 명분의 명부를 발견한 순간을 꼽았다. 그는 “전쟁 직후 1953년 그 어렵던 시절에도 피해자와 가족들을 직접 찾아 면담한 필사록을 보면서 당시 담당자들의 정성에 탄복했다”고 말했다.

쾌감이 실망으로 바뀌는 것도 금방이었다. 28만 명 명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알고 지내던 서기관이 창고 깊숙이 보관돼 있던 명부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정 학회장이 서기관과 통화하면서 “큰 포상을 받으시게 됐다”고 함께 기뻐했지만 해당 서기관은 오히려 문서 관리 부실로 문책을 받았다. 정 학회장은 “결국 그 서기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직을 했다”며 “일부 공무원의 탁상행정 때문에 의욕을 갖고 일한 사람들이 엉뚱하게 피해를 봤다”며 안타까워했다.

애초 재일동포 역사 전공자였던 정 학회장은 “강제 동원 역사를 빼고 재일동포를 논할 수 없다”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정 학회장은 현장과 소통의 중요함을 몸으로 느꼈다. “나 자신도 위원회 활동을 하기 전에는 연구실 안에서 문서에 매몰된 독선적 연구자였다”며 “위원회 활동은 이런 내가 눈을 뜨도록 해 준 스승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는 강제 동원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연구 성과를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붙였다. 자신이 연구위원으로 있는 ‘일제 강제동원 평화연구회’를 중심으로 전국에 산재한 강제 동원 현장을 학생과 일반인이 직접 둘러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탐방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별로 보급하는 사업이다. 국내 강제 동원 역사 현장은 총 8329곳에 이른다.

그는 현재 인천 부평구, 부평역사박물관과 함께 부평2동에 있는 강제 동원 현장 ‘미쓰비시 마을’을 보존하고 교육 현장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정혜경 한일민족문제학회장#일제 강제동원#부평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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