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하고 나른한 비둘기의 심상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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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지구’전

‘망상지구’전 지하전시실 제3존에 설치된 비둘기 모양의 대형 조형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망상지구’전 지하전시실 제3존에 설치된 비둘기 모양의 대형 조형물.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8년 전 세계로 생중계된 올림픽 성화대 단체 화형 이후부터였을까. 언제부턴가 비둘기는 서울에서 결코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7월 1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망상지구(The Paranoid Zone)’전은 달갑잖은 도시 공생자인 비둘기에 대한 미묘한 시각을 돌이켜볼 기회를 선사한다.

복합매체 설치예술, 영화와 공연 미술 작업을 해온 이형주 작가가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아 뮤지션 장영규 달파란 정태효, 미디어작가 김세진 박용석, 조명디자이너 장진영, 사운드 엔지니어 오영훈 등과 협업해 기승전결의 흐름으로 엮인 4개의 전시공간을 구성했다.

각 분야의 현역 전문가들이 긴밀하게 협업한 흔적은 각 공간의 밸런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요소 하나가 튀지 않으면서 공간의 시각과 청각적 요소를 통째로 활용해 부풀림 없는 심상을 전한다.

반투명 구조물의 미로에 영상과 효과음을 뒤섞어 뿌려 놓은 첫 번째 존, 검정 머리채를 늘어뜨려 놓은 듯한 섬유 설치물과 영상을 배치한 두 번째 존을 지나면 클라이맥스인 세 번째 존에서 대형 비둘기 조각을 마주한다. 천천히 회전하는 높이 9.5m의 비둘기 위로 여러 영상이 순차적으로 투사된다. 유리거울 파편을 깃털처럼 몸에 붙인 비둘기는 몸으로 받은 영상을 벽면으로 반사시키며 움직인다. 비둘기 옷을 걸친 사람, 전선 위의 비둘기, 촘촘하게 붙인 비둘기 떼 사진, 그리고 그저 ‘파란’ 빛. 어떤 설명도 없이 야릇하고 나른하게 관람객 저마다의 비둘기에 대한 심상을 건드린다.

마지막 4번째 존에는 6개의 커다란 안락쿠션에 나눠 앉은 관람객 앞에 하염없이 일렁이는 새하얀 연기 영상이 놓여 있다. 각 전시실에서 참여 작가들이 진행하는 댄스, 악기 연주, 합창, 영상 퍼포먼스 일정은 인터넷 홈페이지(mmca.go.kr)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망상지구#이형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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