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수]봄빛 가득한 문화예술의 전당에 베토벤 교향악이 울리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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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문화의 샘 예울마루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望馬山)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망을 보게 하고 훈련도 시켰던 곳이라고 한다. 망마산에 둥지를 튼 예울마루는 남해안 문화의 샘으로 도약하고 있다. 예울마루 제공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남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望馬山)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망을 보게 하고 훈련도 시켰던 곳이라고 한다. 망마산에 둥지를 튼 예울마루는 남해안 문화의 샘으로 도약하고 있다. 예울마루 제공
전남 여수시 시전동 문화예술공원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에서는 21일 베토벤의 서곡 ‘에그몬트’가 울려 퍼진다. 베토벤이 1809년 작곡한 이 곡은 폭군의 압제에 있던 네덜란드를 구하려는 에그몬트 백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어 ‘베토벤 협주곡 4번’, 관중에게 익숙한 교향곡 제5번 ‘운명’ 등이 연주돼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감동을 선사한다.

대극장은 무대에서 1021번째 끝 좌석까지 거리는 21m로 가깝다. 예술가들이 공연을 하기가 편안해 다시 서고 싶은 무대로 꼽히는 이유다. 좌석도 무대가 잘 보이도록 배치돼 있고 대극장 벽에 설치된 대형 커튼이 공연 장르에 따라 모습을 바꿔 생생한 음색을 전달한다. 첨단 시설을 갖춘 대극장은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공연장이다. 여수 밤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이 공연시간을 맞춘다면 예울마루에서 품격 높은 문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베토벤 교향곡은 피아니스트 문지영 씨와 수원시립교향악단이 협연한다. 문 씨는 지난해 9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60회 부조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1949년 시작된 부조니 콩쿠르의 첫 동양인 수상자다. 수원시향 김대진 예술감독은 문 씨를 가르친 스승이다. 김 감독은 1994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우수한 제자들을 길러낸 교육자로 평가받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첫 공연이 여수에서 펼쳐지는 것은 교향곡 ‘운명’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95년 여수에서 태어난 문 씨는 일곱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힘든 가정형편으로 피아노 없이 멜로디언으로 연습을 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화제를 모았다. 대신 피아노가 있는 동네 교회, 학원을 돌아다니며 연습을 했다.

여수 출신으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문지영 씨는 21일 예울마루에서 베토벤 운명 등을 연주한다. 예울마루 제공
여수 출신으로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문지영 씨는 21일 예울마루에서 베토벤 운명 등을 연주한다. 예울마루 제공
예울마루는 문 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한국메세나협회를 통해 GS칼텍스재단 장학금 1000만 원을 지원하고 2013년 콩쿠르 우승 기념 축하 독주회를 열어줬다. 이를 계기로 여수 시민과 출향 기업가들이 물심양면으로 문 씨를 지원하고 있다. 따뜻한 지역사회의 관심 덕분에 문 씨는 2014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문 씨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문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년 반 만에 예울마루에서 연주를 하게 됐는데 여수에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대극장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연주를 앞두고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또 “고향인 여수를 자주 찾고 있는데 늘 포근하다”며 “여수 시민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기쁘다”고 덧붙였다.

문 씨의 협연 티켓 가격은 R석 5만 원, S석 3만 원, A석 2만 원.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협연 공연 티켓은 보통 7만 원 수준이다. 하지만 예울마루는 여수 출신 피아니스트의 금의환향 무대를 시민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저렴하게 값을 정했다. 무대 좌석 10%는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홀몸노인, 지역아동센터 아동 등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공간이다. 공연 이후에는 여수시상공회의소 등 지역 각계에서 문 씨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후원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2012년 기업 이익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 일원 70만 m²에 1150억 원을 들여 예울마루를 조성했다. 건물은 망마산 중턱에서부터 투명한 큰 유리가 물결을 이루며 해변도로 인근까지 내려온다. 건물 외형은 문화예술의 너울이 넘치고 전통가옥의 마루처럼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울마루는 여수를 문화도시로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여수에서 공연을 하면 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예술가들이 지방공연을 할 때 여수를 가장 선호한다’고 말할 정도다. 예울마루가 여수를 문화 불모지에서 전국 문화투어 필수코스로 발돋움시킨 것이다.

예울마루는 대극장 외에 소공연장(302석), 기획전시장, 전망시설, 야외무대, 잔디마당, 해안산책로 등을 갖춘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공연장에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음향, 조명시설이 설치돼 있어 예술가들이 선호한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예울마루에서 지방 공연 중 유일하게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사용했다. 유튜브로 유명해진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는 한국 지방공연을 할 때 예울마루에서만 연주를 한다.

예울마루는 남해안 문화예술의 산실로 도약하고 있다. 2012년 5월 개관이후 4년 동안 관람객 43만 명이 찾았다. 여수 시민이 29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모두 한두 번꼴로 예울마루를 찾은 셈이다. 예울마루에서 그동안 진행된 공연은 607회, 공연기간은 529일에 달한다. 공연 관람객 인원만 31만 명이었다. 전시 39회, 전시기간이 942일에 관람객은 12만 명이었다. 이승필 예울마루 관장(53)은 “여수가 남해안 문화중심도시로 발전하는 데 예울마루가 디딤돌을 놓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남도&여수#예울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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