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커제, 韓 박정환, 日이야마…‘알파고’가 두려워하는 상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8일 16시 39분


코멘트
정용진 사이버오로 컨텐츠 총괄이사1988년 한국기원 ‘월간바둑’ 기자로 입사한 뒤 10년간 편집장을 하다가 2002년부터 인터넷바둑 일을 하고 있다.
정용진 사이버오로 컨텐츠 총괄이사
1988년 한국기원 ‘월간바둑’ 기자로 입사한 뒤 10년간 편집장을 하다가 2002년부터 인터넷바둑 일을 하고 있다.
‘알파고 쓰나미’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처음 들은 베를리오즈의 스승이 자기 머리통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라 모자를 제대로 못 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데, 이세돌 9단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이 그러했다. 바둑은 인공지능이 쉽게 정복할 수 없는 지구상의 마지막 게임, 인간 자존심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상상을 초월한 ‘기계의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9년 전의 체스처럼 바둑 또한 인공지능에 완전정복된 것일까.

알파고에 1-4로 진 이세돌의 세계랭킹은 3위다. 중국의 커제(柯洁) 9단이 1위, 한국의 박정환 9단이 2위다. 이들이 나서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할지. 마침 일본기원이 일본챔피언인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9단에게도 알파고와 대결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공개 도전장을 냈다. 한중일 1인자들로선 바둑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을 것이다. 구글이 재대결을 수락한다면 한중일 랭킹1위 가운데 누가 나가 싸우는 게 승산이 있을까.

세계랭킹 순으로 따지자면 당연히 중국의 커제다. 1997년에 태어나 11세에 입단해 지난해부터 밤하늘의 섬광처럼 홀연히 치솟아 단숨에 3개의 세계타이틀(백령배, 삼성화재배, 몽백합배)을 거머쥔 신성(新星)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이어가던 세계무대에서 5년 6개월 만에 출현한 3관왕이다. 이세돌 9단을 연파(상대전적 8승2패)하며 확실한 자기시대를 열었다. 보수적이고 점잖은 바둑계에서 보기 드물게 입담도 걸출하여 “이세돌의 시대는 갔다” “이세돌이 내게 이길 확률은 5%”라는 등 거침없는 언사를 예사로 해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실력과 더불어 스타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천재 기사로 주목받고 있다.

바둑 스타일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실리를 중시하기는 하지만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바둑을 두는 편이다. 초반 포석이 빠르고 수읽기가 깊다. 김성룡 9단은 “번뜩이는 감각은 이세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며 이세돌과 박정환 두 사람의 장점을 합쳐놓은 바둑”이라고 칭찬한다. 다만 침착하게 대응하는 기풍에 다소 약한 면을 보이고, 우세할 때 이창호처럼 판을 정리하는 마무리 솜씨가 아직 아쉽다. “알파고가 이세돌은 이겨도 나를 이길 순 없다”고 큰소리 쳤는데,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박정환 9단은 28개월째 한국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1993년에 태어나 13세에 입단했다. 2011년 후지쯔배를 석권하며 첫 세계타이틀을 차지했는데 당시 18세 7개월로 후지쯔배 사상 최연소 우승기록이었다. 일찌감치 세계타이틀을 차지했고 국내기전도 15회나 제패하며 1인자에 올랐지만 지난해 2월 LG배에서 우승하기까지 4년 동안 세계대회 우승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아 ‘국내용’ ‘멘탈이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세돌이 예전 이창호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세돌을 완전히 넘어서지 못한(상대전적 10승17패) 모습도 선결과제다.

단단하게 두며 집을 챙기는 실리형 기풍이다. 수읽기가 정교하고 무엇보다 안정감 있다는 게 큰 장점이지만 커제나 이세돌에 견줘 결정타가 없다는 건 약점이다. 세계대회 우승횟수가 적은 탓에 강렬한 인상을 심지 못해 그렇지 여타 기록을 보면 고루 뛰어나다. 이세돌은 “알파고가 인간이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라며 “박정환이 두었으면 이기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올해는 격년 혹은 4년마다 여는 세계대회가 모두 몰려있는 해다. 최강 한국바둑의 위용을 찾느냐 마느냐는 박정환이 어떤 성적을 거두느냐에 달렸다.

이야마 유타 9단(1989년생, 2002년 입단)은 일본 역대 최강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의 7대 기전 가운데 6개를 휩쓴 6관왕을 무려 3번이나 달성하고 있다는 건, 흡사 1970, 80년대 한국바둑에서 전관왕을 3차례나 차지한 조훈현 9단과도 같이 독보적이다. 일본바둑이 한중에 밀려 2류로 전락한 처지라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모양과 이론을 중시하는 일본풍에 구속되지 않고 실전적이고 자유분방한 바둑을 둬 한중 기사들이 세계 톱클래스로 인정하는 유일한 일본기사다. ‘싸움꾼’으로 불릴 정도로 힘이 좋다. 이세돌에게는 2승6패로 밀리고 있지만 내용은 대등했다. 일본바둑의 명예를 되찾겠다고 각오를 보인 만큼 올해 눈여겨볼 다크호스다.

기세의 커제, 박정환의 안정감, 이야마의 전투력. 알파고는 어떤 바둑을 가장 껄끄러워할까?

정용진 사이버오로 컨텐츠 총괄이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