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 바닷길 끝 작은 섬, 목숨 걸고 절개 지킨 아낙의 애절함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2월 23일 05시 45분


전남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중산마을에서 우도마을에 이르는 우도길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 빠져나갔던 바닷물은 노을과 함께 고즈넉한 남도 바다를 채우며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 길 위를 사람들은 오가며 삶을 이어간다. 스포츠동아DB
전남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중산마을에서 우도마을에 이르는 우도길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 빠져나갔던 바닷물은 노을과 함께 고즈넉한 남도 바다를 채우며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 길 위를 사람들은 오가며 삶을 이어간다. 스포츠동아DB
■ 1. 전남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우도마을

진정한 스토리텔링 ‘설화’ 찾아 떠난 곳
하루에 두 번 열리는 바닷길 끝 작은 섬
뭍에서 숨진 남편 그리는 청상의 슬픔
욕정에 눈 먼 뭍 사내의 ‘소 울음소리’
이름없는 섬, 그렇게 우도(牛島)로…


세밀한 생활사와 풍속사 혹은 세상의 어긋난 도리에 대한 풍자.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동안 윤색과 와전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를 낳은 공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들의 입이 아니라면 들을 수 없다. 콘텐츠로서 다양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 본래의 설화를 들여다보는 까닭이다. 넘쳐나는 대신 그만큼 사라져가는 진정한 스토리텔링 콘텐츠로서 설화의 가치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 고흥군은 땅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반도의 토양 위에서 먼 옛날부터 이야기가 풍성했던 곳이다. 조선시대 류몽인이 이 곳에서 ‘어우야담’을 쓸 수 있었던 한 배경이다. 웹툰과 애니메이션,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의 또 다른 원형이 될 수도 있을 고흥의 설화를, 스포츠동아가 매월 격주, 총 20회에 걸쳐 연재한다.

■ 우도마을의 전설

흉년까지 더해 어지럽고 흉흉한 시절, 가난한 산골의 백면서생과 뛰어난 미모의 아내는 형편이 더없이 나빠지자 수목이 아름답고 바닷길이 열리는 작은 섬으로 살림살이를 옮겼다. 어느 날 남편은 “건너 육지 마을에 볼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사흘이 지난 뒤 “내 당신 곁을 촌시라도 떨어져 살 수 없지만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 선비의 도리로 도저히 방관할 수 없어 분연히 출전한다”며 “내 살아 돌아올 때까지 몸조심하라”는 서찰을 남기고 전사했다. 남편을 잊지 못하는 아내는 시묘살이를 시작하지만 그 미색에 육지 마을 부잣집 아들이 어느 날 밤 달려들었다. 완강한 저항 끝에 아내는 위엄을 더해 “당신이 내 남편처럼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겠소?” 묻고는 소 울음소리를 외치고 오라며 내쫓았다. 봉우리에 오른 사내의 소 울음소리에 아내는 자결했다. 사내는 기겁하며 도망쳤다.

● Tip 설화란?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상상으로 그려낸 이야기다.

“장에도 나가 팔고, 우째 알고 주문헌 사람들에게도 보내고 그라지요.”

찬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방한의 두터운 옷가지로 온몸을 둘러싼 초로의 아낙네가 말했다. 사람의 발이라도 닿으면 무릎까지 빠져들게 하는 득량만의 광활한 ‘뻘밭’(갯벌) 사이로, 오랜 삶의 세월과 흔적이 다져놓은 길로부터 이제 막 빠져 나온 터였다. 여인은 노동의 구릿빛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소박하게 웃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채비로 부지런했다.

‘섬 그늘에 굴 따러’ 간 엄마 대신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동요 ‘섬집아기’ 중에서) 든 아기는 이제 제 밥벌이를 위해 혹은 공부를 위해 도회지로 나갔을 것이다. 아기 생각에 엄마의 맘을 설레게 하는 갈매기만이 여전히 ‘끼룩끼룩’ 울음소리를 냈다.

우도길의 중산마을 쪽 진입로에 선 우도마을 표지석. ‘가족의 섬’이라는 고흥군의 관광테마가 눈길을 끈다. 승용차 안 내비게이션엔 우도길이 보이지 않고, 푸른 바다 위에 떠 나아가는 자동차 표시만 있다. 그렇게 당도한 마을에선 벌써부터 내년 7월을 준비하는 새꼬막 채묘대 작업이 한창이다.(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우도길의 중산마을 쪽 진입로에 선 우도마을 표지석. ‘가족의 섬’이라는 고흥군의 관광테마가 눈길을 끈다. 승용차 안 내비게이션엔 우도길이 보이지 않고, 푸른 바다 위에 떠 나아가는 자동차 표시만 있다. 그렇게 당도한 마을에선 벌써부터 내년 7월을 준비하는 새꼬막 채묘대 작업이 한창이다.(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포츠동아DB

● 하루 두 번의 바닷길, 그 긴요한 밥벌이

부부는 여섯 개의 망을 경운기에 차례로 실었다. 망 속엔 석화가 가득했다. 한 망당 2만5000원, 반나절 채취한 굴은 부부에게 또 하루, 15만원의 생계를 안겨준 보물일 터이다.

바다가 갈라놓은 길 위에서 세상살이의 녹록치 않음을 굳이 말하지 않겠다는 듯 굴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길은 인간문명의 시선에 들지 않아서 내비게이션의 표시대로라면 자동차는 바다 위에 떤 채로 조금씩 움직일 뿐이다. 문명은 엄격한 자연 앞에 무력했다.

그 1km 남짓한 시멘트길 끝에, 섬은 있다. 전남 고흥군 남양면 남양리 우도마을이다.

득량만의 바다는 하루 두 번 섬과 뭍을 이어준다. 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쓸려나가면 주변보다 높은 해저지형이 드러나면서 남양면 중산마을과 우도마을을 잇는 바닷길이 열린다. ‘신비의 바닷길’이라 불리는, 53가구 110여명 섬사람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까마득한 먼 옛날, 가난한 선비의 아내도 바다 위로 난 이 길을 조심스레 오갔을 것이다. 절세가인의 여인은 책 밖에 모르는 서생의 아내로 힘겨운 생계에 허리 펼 날 없었다.

“당신이 홀로 살림에 시달려 산간벽지에서 살아가기가 힘들뿐 아니라 험악한 산과 들로 헤매며 애쓰는 꼴을 더 이상 볼 수만 없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섬이 하나 있으니 차라리 그 곳에 가서 갯것을 뜯어먹고 살더라도 이보다는 낫지 않겠소?”

부부는 그렇게 섬으로 스며들었다. 바닷길이 열리면 아내는 뻘로 나가 조개며, 굴이며 ‘갯것’을 밥벌이 삼았다.

지금 섬사람들에게도 ‘갯것’은 그렇다. 그 중 굴과 새꼬막은 섬마을의 삶에 풍성하고도 긴요한 존재이다. 섬 안쪽 선착장 앞 너른 공동작업장에서 만난 이용남(62)씨도 그 긴요한 일상을 벌써부터 준비하기에 바빴다. 이씨는 20∼30여명의 섬사람들과 한 구석에 터를 잡고 앉아 1m80cm 길이의 대와 그물을 엮어 새꼬막 채묘대를 만들고 있었다. 내년 7월 채묘를 위한 채비의 손짓이 빨랐다.

“7월에 채묘대를 얕은 바다에 꽂아 놓으면 새꼬막 포자가 붙어요. 이것을 바다에 털고 그 다음해 4∼5월께 수심 10여m 남짓 할라나, 암튼 살포를 해부러. 그라고 잘 크면 1년 만에 채취헐 수 있는 거지라. 헌디 예전만 못혀. 바다의 이상 저온현상이 심해져갖고….”

동행한 남양면사무소 직원은 “그래도 비교적 잘 사는 동네요”라며 웃는다.

● 우도, 소머리를 닮은 섬

하지만 먼 옛날 아낙의 삶은 신산했다. 남편은 어느 날 뭍으로 나갔다. 잠시잠깐을 기약한 것이었지만, 때마침 일어난 변란을 선비 남편은 두고만 볼 수 없었다. 기어이 그리로 나아가 숨졌다.

홀로 남은 청상의 미색은 육지의 거부 자식에게는 탐욕의 대상이었다. 여린 몸을 범하려는 사내에게 아내는 비명으로 소리쳤다. ”뒷산 상봉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고 큰 소리로 소 울음소리를 목청껏 세 번 외치고 돌아오라“고, 그러면 자신을 내어 주겠다고. 한껏 부풀어 오른 욕정을 이기지 못한 우매한 사내는 이내 산봉우리에 올라 소 울음을 울었다.

사이, 청상은 옷고름으로 목을 맸다. 사람들은 청상의 주검을 풀과 짚으로 덮어 장례를 치른 남편의 초분에 묻었다. 넋은 어딘가에서 평안할까. 한낱 무명에 불과했던 섬은 그렇게 ‘우도(牛島)’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야기는 섬사람들에게 구전돼 내려오는 전설. 우도 입구에는 “고려 말 황씨가 처음으로 거주”했다면서 “소머리처럼 생겨서 소섬 또는 쇠이”로 불렸고, 훗날 “쇠이가 한자화해 우도가 됐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마을 최고령자 박정순(84) 할아버지는 “대나무가 많아 임진왜란 때 화살을 만들어 진상혔는디, 승리를 거뒀다 혀서 우죽도(牛竹島)라, 아마 모르긴 몰러도 일제강점기 때 ‘죽’자를 없애 우도라 혔다네요”라고 소개했다.

실제로도 공동작업장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소머리 모양의 바위가 있다. 욕정을 이겨내지 못한 뭍의 사내는 그렇게 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박 할아버지는 “소가 오른쪽으로 누웠어야는디, 아! 왼쪽으로 누워 부러서…. 옛말에 그러 안 혀요? 소가 왼쪽으로 누우먼 영 힘을 쓰지 못현다고”라며 “허허” 웃는다.

그래서일까. 우도에서는 소를 키우지 않는다.

● 저녁 노을, 먹먹한 아름다움

소바위 위 야트막한 둔턱에도 대나무가 자라 있다. 박 할아버지는 “신우대”라고 설명하는데, 이제는 화살로도, 새꼬막 채묘대로도 쓰이지 않는 신세다. 그래도 여전히 줄기는 하늘로 쭉 뻗고 잎도 무성하다.

그 위로 해는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연붉은 색채를 넓게 드리우며 노을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구름은 어느새 검은 빛으로 무심한 표정이다. 노을과 구름은 다시 바닷물을 몰고 왔다. 우도마을을 바라보는 중산마을 해안에서 ‘신비의 바닷길’ 갈라짐 시간표는 오후 5시38분을 가리켰다.

사방은 우도마을을 살다간 청상의 허망하고 서글픈 삶을 말해주는 듯 고요했다. 다만 철썩철썩 차츰차츰 바닷길을 때려 삼켜버리는 물소리가 심란했다. 청상의 울음소리가 그것일까.

언제나 내일엔 오늘보다 한 시간 늦은 시간, 다시 바닷길이 열리고 닫힐 것이다. 저 멀리 갯벌 사이 삶의 흔적도 모습을 드러낼 터이다. 그 위로 또 다른 아낙이 석화 절반, 소박한 살림살이 절반의 무게를 이끌고 들어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여자를 맞는다.


■ 가는길

남해고속도로 고흥 IC→고흥 방면 진입, 한천교차로에서 도양·녹동 방면→우주항공로를 따라 남양교차로에서 남양·중산리 방면→고흥로에서 남양·우도.

■ 바닷길을 즐기려면?

조수 간만의 차로 생겨나는 바다 갈라짐 현상은 매일 시간을 달리한다. 우도로 향하는 우도길 진입로 표지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사전에 국립해양조사원 홈페이지(http://www.khoa.go.kr)나 바다타임 홈페이(http://www.badatime.com)와 앱을 이용하면 좋다. 인근 중산 일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닷길과 그 노을빛의 장대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은 일품이다. 우도로 가는 길을 조금만 거슬러 오르면 우주항공로와 인접해 쉽게 찾을 수 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더욱 고즈넉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중산마을 우도길 진입로의 정자도 훌륭한 선택이 된다.

고흥(전남)|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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