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형 “SF 판타지부터 평범한 일상 이야기까지… 내 글 읽어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쓸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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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러브 레플리카’ 낸 윤이형

“한때 지독한 압박에 글쓰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소설 쓰는 일 자체가 절박하면서도 기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윤이형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때 지독한 압박에 글쓰는 일이 고통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소설 쓰는 일 자체가 절박하면서도 기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는 윤이형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소설가 윤이형 씨(40)는 최근 2, 3년 새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주목받았다. 그 수상작들을 비롯해 윤 씨 소설의 특징인 SF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새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문학동네)에 담겼다. 25일 만난 윤이형 씨에게 순문학에선 드문 이 상상력에 대해 묻자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가 있으면 거기에 맞는 옷을 찾아주려던 건데, 그게 SF 같은 장르소설 스타일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SF적 상상력이) 특별하거나 새롭다고 하는데 내게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의 작품이, 소설이 오랫동안 인간에게 들려줘온 ‘이야기’의 기본이 탄탄하다는 게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러브 레플리카’에도 SF의 설정이되 죽죽 잘 읽혀나가는 작품이 많다. 단편 ‘대니’에서는 안드로이드 베이비시터 대니가 손자를 봐주는 60대 할머니와 애틋한 정을 나눈다. ‘굿바이’에서는 육체를 지구에 두고 기계인간이 돼서 화성으로 떠나는 인류가 등장한다. ‘핍’은 한순간에 어른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아이들끼리 힘겹게 삶을 살아나가는 이야기다. 다섯 살 난 아들이 있는 그는 “육아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서라도 잠시 판타지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작가 자신 가정을 일구어 살아가는 생활인의 현실에 부대껴온 까닭에 새 소설집에는 현실 밀착형 작품도 적지 않다. 표제작 ‘러브 레플리카’는 스스로에 대해 혐오한 나머지 거식증에 걸린 ‘이연’과 이연의 상처에 몰입하고 그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믿어버린 ‘경’의 이야기다. ‘루카’에서 아들이 동성애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한 목사 부친은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믿는다. 모두 기억을 잘못 입력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다. 작가는 극적인 사건이 아닌,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에 주목한다. “인간을 채워주는 것이 기억인데, 이 기억이 잘못됐다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잘못’을 일으키는 내면의 감정을 현실적으로 써보고 싶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여느 시기보다 힘겨운 때다. 그 자신의 말처럼 “(소설 쓰는 일은) 우리 집은 왜 부자가 아니냐고 우는 아이의 눈물을 그치게 하지 못하고, 폭설처럼 온 세상에 쏟아지는 죽음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하며, 넣은 동전만큼 정확하게 무언가를 내주지도 않는다.” 그는 그러나 읽어줄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계속 써나가는 일이 의미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소설 쓰는 일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윤이형#러브 레플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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