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관능’ 혹은 ‘잔혹성’…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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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미술사/잔혹미술사/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송태욱 옮김/각 252쪽·각 1만6000원/현암사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이 1890년 완성한 유채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격정적인 키스 부분을 확대해 좌우로 뒤집은 이미지를 ‘관능’ 편 표지에 인쇄했다. 지나다가 슬쩍 표지만 넘겨다본 회사 후배가 말했다.

“탐나는 책이네요.”

인터넷 없던 10대 학창시절에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 주인공처럼 방구석에 숨어 몰래 들춰 보던 ‘서양누드명화집’의 기억이 두근두근 떠올랐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저서 ‘변신 이야기’에 기술한 그리스 신화 속 피그말리온 왕의 사연은 더없이 관능적이다. 이상적인 여성상을 상아로 빚어 놓고 사랑에 빠져 버린 왕을 아프로디테 여신이 딱하게 여겨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는 이야기. 일본 도쿄조형대 미술사 교수인 저자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2차원 캐릭터의 이미지에 아련한 연정을 품어 본 적 있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공책을 받치는 용도로는 감히 쓸 수 없었던 소피 마르소 사진 코팅 책받침의 기억을 돌이키게 만드는 글이다.

‘아폴론과 다프네’ ‘제우스의 정부(情婦)들’ 식의 소주제별 그림을 묶어 놓아 눈이 심심하지 않다. 글은 가뿐해도 분류와 선별이 집요하다. 진지한 분석서는 아니지만 유명 미술관 방문기를 구태의연하게 엮어 그럴듯한 테마를 미끼로 내건 속 빈 강정도 아니다. ‘잔혹’편은 벨기에 화가 테오도르 롬바우츠의 ‘프로메테우스’를 표지 이미지로 썼다. ‘신에게 도전한 자들의 최후’ 챕터에 간을 쪼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그림과 함께, 아폴론에게 도전했다가 살가죽이 벗겨지는 형벌을 당한 마르시아스의 그림을 이어냈다. 잔혹한 괴담이나 영화를 즐겨 보는 독자라면 이 역시 심심할 틈 없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관능미술사#잔혹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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