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惡은 싹튼다, 일상적 무관심 속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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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최호영 옮김/376쪽·1만6000원/책읽는수요일
세계적 지성으로 꼽히는 두 저자… 불확실성 커진 우리 사회와
타인에 벽을 치고 옳음에 귀닫는 대중의 ‘도덕적 불감증’ 진단
사회적 문제 다룬 SNS 글에 ‘좋아요’ 누르는 것 넘어서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회복해야

기존의 도덕이 해체된 시대에 악은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처럼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악은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5월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이벤트로 연출된 다스베이더. 동아일보DB
기존의 도덕이 해체된 시대에 악은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처럼 우리가 거리에서 마주치면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악은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5월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이벤트로 연출된 다스베이더. 동아일보DB
“여전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전체에 유일한 화두는 먹고사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이것을 우리가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가 계간 ‘황해문화’ 올 겨울호에 쓴 ‘몫 없는 이들의 몫-을의 민주주의를 위하여’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우리가 ‘인터레그넘’의 시기에 있다고 본다. 인터레그넘은 이탈리아 정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제기한 것으로 왕이 죽었는데 새로운 왕은 즉위하기 전의 공백 상태를 말한다.

한국이 딱 그렇다. 민주화와 산업화 세력이 경쟁하던 거인들의 시대는 갔다. 그 시대에는 국민 건강을 위해 의료보험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대규모의 기획이 가능했다. 지금은? 한국 정부의 금융정책보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대다수 한국인의 삶이 곤두박질칠지 아닐지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참여’ ‘실용’에 이어 대통령의 이름을 딴 정부까지 들어섰지만 새로운 시대는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1989년 지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다. 공저자인 레오니다스 돈스키스는 철학자이자 정치이론가로, 유럽의회 의원을 지낸 리투아니아 ISM경제경영대 교수다.

이들은 책에서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서양의 현대 사상가와 소설가, 비평가 등을 종횡으로 오가며 대담을 벌이며 거인들의 시대처럼 분명한 드라마, 꿈, 선악의 행위자들이 있던 시대는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들은 기존의 구조, 제도, 풍속, 도덕이 해체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이른바 ‘유동적(액체) 근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악은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의 총 끝이나 북한 김정은 독재와 같은 특정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타자를 일부러 잊는 것, 우리 곁에서 무언가 옳은 것을 하거나 말하는 사람들을 물리치는 것, 다른 종류의 인간을 인지하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장벽에서 자라난다. 감수성의 상실이 곧 ‘도덕적 불감증’이다.

책은 “사랑, 우정, 충성 그리고 창조의 정신을 통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소통이 가능한 것처럼 회자되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다르지 않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조롱하는 일이 ‘놀이’처럼 벌어진다.

페이스북에는 난민이나 전쟁 등으로 기아 상태에 놓인 비참한 이들을 다룬 게시물이 적지 않다. 여기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 이들의 처지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책의 저자들은 “SNS가 우리를 대신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전진시키지 않는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학살과 같은 범죄뿐 아니라 그것을 망각하는 것도 악으로 본다. 기억만큼 윤리와 직결된 것도 없다.

저자들은 “역사는 어떤 정치적 신조에 봉사하는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정치가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라며 “역사가들이 그들의 일을 하도록 놔 둬야 한다”고 말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도덕적 불감증#스타워즈#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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