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디지털시대, 그래도 회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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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플라토 ‘그림/그림자’전

헤르난 바스의 아크릴화 ‘파티의 불청객’(2014년). 미술관 측은 “특유의 화려하고 세련된 필치와 대중적 감성이 만나 이뤄낸 무시간성의 이미지 속에 동성애자인 작가의 내면적 불안감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이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플라토 제공
헤르난 바스의 아크릴화 ‘파티의 불청객’(2014년). 미술관 측은 “특유의 화려하고 세련된 필치와 대중적 감성이 만나 이뤄낸 무시간성의 이미지 속에 동성애자인 작가의 내면적 불안감과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관심이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플라토 제공
빌헬름 사스날의 ‘Manta Ray’(2012년·왼쪽)와 백현진의 ‘평상심’(2015년). 백 씨는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다. 플라토 제공
빌헬름 사스날의 ‘Manta Ray’(2012년·왼쪽)와 백현진의 ‘평상심’(2015년). 백 씨는 인디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멤버다. 플라토 제공
하늘을 담은 그림이 때로 하늘보다 아름답다.

6월 7일까지 서울 중구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전. 폴란드 작가 빌헬름 사스날(43)의 유채화 ‘Manta Ray’(2012년)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을 했다.

딱히 아름답다고 찬탄할 만한 그림은 아니다. 언뜻 보면 그저 칙칙할 뿐이다. 커다란 쥐가오리를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붙들어 옮기고 있는 바닷가 정경을 담았다. 세부 묘사를 생략한 실루엣 이미지에 가깝다. 하지만 게으르거나 불친절하게 여겨지진 않는다. 오히려 언젠가 어딘가의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에서 짤막하게 새겨뒀던 기억을 충실히 돌이키도록 만든다. ‘저런 하늘빛. 어디서 봤더라.’ 희미해도 기꺼운 반추다.

실체 앞에서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1초 만에 뚝딱 찍어낼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인지 그럴듯해 보이도록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미디어 또는 설치 작품이 현대미술의 주류를 차지한 지 오래다. ‘캔버스에 물감을 찍어 바르는 케케묵은 비효율적 붓질’의 회화 작업은 존속의 근거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 기획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캔버스와 붓과 물감을 놓지 않겠다고 작정한 젊은 작가 12인의 작품을 모아 소개한다.

작가들은 전통적 사생(寫生)의 틀 위에서 저마다의 기억 속 이미지를 조합했다. 그 재구성은, 그림 앞에 선 이가 캔버스 속 대상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을 건드리고자 골몰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회화의 기원은 그림자 윤곽의 모사였다”고 한 로마 관료 가이우스 플리니우스(23∼79)의 저서 ‘박물지’에서 전시 표제를 가져왔다.

소재와 표현 방식에 한계를 두지 않고 폭넓은 스펙트럼을 오가는 사스날의 세 작품과 함께 눈여겨볼 이는 미국의 스타 작가 헤르난 바스(37)다. 그가 내놓은 신작 아크릴화 5점은 영화나 만화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 문학, 옛 미술 작품에서 가져온 이야기를 풍성한 장식적 이미지 속에 녹여냈다.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묘사했지만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현실 어디에도 실재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박진아(41)는 여러 장의 사진에서 얻은 이미지를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 캔버스 위에 드러낸다. 야외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유채화 ‘여름 촬영’(2015년)은 얼핏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의 여러 장면에서 차용해 구성한 그럴듯한 재현이다.

실재하는 사물을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진은 있지만, 회화를 진짜 작품처럼 보여주는 사진은 아직 평범한 인터넷 환경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붓질의 흔적이 형성한 양감을 가까이 다가가 확인할 수 있는지 여부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 전시가 들여다보는 회화의 여러 존재가치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작품과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보호용 유리판은 설치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갑자기 인원을 늘린 탓인지 안내요원 교육이 부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근무 중에 작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고 문 닫기 10여 분 전부터 관람객에게 눈치를 주는 행태는 관람 편의를 위해 바로잡아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1577-7595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삼성미술관#플라토#그림/그림자#빌헬름 사스날#Manta Ray#헤르난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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