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개인의 쇄신, 심미적 경험에서 비롯”… 한국사회의 헝클어짐에 싸움을 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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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집필한 문광훈 교수

문광훈 충북대 교수(독문학·사진)의 저서 ‘심미주의 선언’은 언뜻 미학개론서처럼 보인다. 저자는 문학과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의 아름다움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탐구를 500쪽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저서에 담았다. 예술론과 미학에 관심 있는 소수의 독자가 대상이 아닐까 했는데 문 교수의 의도는 달랐다. 그는 이 책이 “정치적”이라고 했다.

“현실에 대한 개혁은 개인에게서 시작되며 개인의 쇄신은 예술적 심미적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게 문 교수가 말하는 ‘심미적인 것의 정치성’의 근거다. ‘변화하고자 하는 개인 모두’가 독자가 된다는 의미다. 예술적인 경험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추구하도록 이끈다고 문 교수는 믿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이 예술 체험은 더욱 절실하다. “경제적 규모는 큰데, 사람들은 원한과 분노에 차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정신없이 살면서 공격성을 키워가기만 해요.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깊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합니다.”

그가 예로 드는 예술 체험 중 하나는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의 그림 ‘자화상’이다. “그림 속 공재는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건 세상을 이루는 소음과 소란의 정면입니다. 서인이 득세한 현실에서 남인인 공재는 몰락의 길만 걸어야 했어요. 그는 30세 전후로 이미 벼슬길을 포기했습니다. 삶의 불평등과 불의. 부당함과 어이없음. 자화상이 응시하는 건 그렇게 불운과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현실입니다.”

공재는 자신이 속한 세계의 비극을 품으면서 담대하게 자기를 응시함으로써 자아 성찰을 수행한다. 인간의 삶과 세계 전체를 돌아보는 것, 그것이 예술의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재가 그러했듯 현대의 사람들도 자신을 돌아보고 응시하기를, 그러면서 공재가 그러했듯 자아를 지킨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저자는 청한다. 책에서는 ‘자화상’뿐 아니라 슈베르트의 ‘즉흥곡’,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백석의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등 예술 작품을 통해 삶을 성찰하게 하는 예술의 의미를 탐색한다.

“저녁에 앉아 TV를 보면 먹음직스러운 음식, 화려한 옷차림 같은 화면이 나오지요. 나름의 아름다움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오직 거기에만 미친다면 슬픈 일일 겁니다. 아름다운 것이 감각적으로 기쁨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울림을 주기 위해선 이성이 작동돼야 합니다. 미에 대한 얕은 경험이 아니라 삶의 넓고 깊음을 깨닫게 하는 체험 말입니다. 예술적 경험이란 바로 이런 겁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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