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지친 심신에 희망과 긍정의 씨앗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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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기운 가득 ‘쿠사마 야요이’전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 씨의 ‘호박’ 조각은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대표작 중 하나다. 화려한 색채와 물방울무늬를 결합한 ‘호박’은 관객을 행복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예술의전당 제공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 씨의 ‘호박’ 조각은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대표작 중 하나다. 화려한 색채와 물방울무늬를 결합한 ‘호박’은 관객을 행복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예술의전당 제공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 씨(85)는 예술이 품은 강렬한 치유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다. 물방울무늬가 주변 사물에 겹쳐 보이는 편집적 강박증으로 고통 받은 어린 시절부터 정신병원에서 작업실로 출퇴근하는 지금까지 그는 오직 예술을 통해 숱한 고비를 극복했다. 험난한 여정에서 길어 올린 그의 작품은 런던 테이트,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의 퐁피두센터 등에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정의 씨앗을 퍼뜨렸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절실한 지금, 고난을 돌파한 예술가의 혼을 담은 ‘쿠사마 야요이-A Dream that I dreamed’전이 서울에 온다.

그의 작품은 예술 애호가든 현대미술에 ‘생짜 초보’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노란 바탕에 까만 점이 줄줄이 박힌 호박 조각부터 형형색색 물방울무늬들이 공간 전체를 뒤덮은 설치작품까지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120여 점을 아우른다. 대구미술관 기획전을 시작으로 상하이 마카오 타이베이 뉴델리 등 2015년까지 아시아 주요 도시를 순회 중인 일정의 일부다. 예술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 작업이 슬픔으로 지친 이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건네주는 자리다.

○ 눈과 마음을 사로잡다

쿠사마 씨는 요즘도 매일같이 그림을 그린다. 점과 선 하나하나에 작가의 손맛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2009년 시작한 ‘나의 영원한 영혼(My Eternal Soul)’ 시리즈 30여 점과 그물망으로 연결된 연작(‘Infinity Net’)을 포함해 회화 100여 점을 선보인다. ‘태양의 광채’ ‘행복한 하늘 아래’ 같은 시적인 제목을 붙인 ‘나의 영원한 영혼’은 원숙한 붓질로 직관적 형태와 밝고 화려한 색채를 결합한 회화 연작이다. 전투하듯 살아온 혼란의 세월을 넘어서 평화를 찾은 노작가의 마음자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2004∼2007년 마커펜으로 그린 작품을 50개 대형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옮긴 시리즈(‘Love Forever’)도 시선을 압도한다. 물방울, 눈동자, 구불거리는 선이 세포 증식처럼 무한 반복되는 화면은 무의식이 회화로 전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를 상징하는 대표작 ‘호박’ 조각도 빠질 수 없다. 수더분한 형태와 화려한 원색의 조화가 돋보이는 ‘호박’은 예술의 섬으로 주목받는 일본 나오시마 섬의 선착장에 1994년 공공 조각으로 첫선을 보였다. “호박의 넉넉한 수수함에 매료되었다”며 작가가 재해석한 호박은 대중을 즐거운 상상의 나라로 초대하는 이미지로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고 있다.

○ 오감으로 체험하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한 쿠사마 야요이 씨의 설치작품.
거울과 조명을 이용한 쿠사마 야요이 씨의 설치작품.
미국 뉴욕에서 전위예술가로 활약하던 시절, 그는 1966년 베니스비엔날레에 공식 초청도 받지 않고 작업을 선보였다. 당시 공원에 장식용 미러볼 1500개를 늘어놓았던 ‘나르시스 가든’이 이번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스틸 공을 활용한 설치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어린 시절 사물이 무한 증식하고 반복되는 듯한 환영 때문에 고통 받은 작가는 자전적 사연을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설치작품으로 발전시켰다. 서울 전시에선 물방울무늬를 3차원적으로 재해석한 ‘나르시스 가든’을 비롯해 거울 풍선 전구 등을 이용해 작가의 공간개념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설치작품과 관객 참여형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장이 끝없이 확장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무한 거울의 방’은 반복과 무한을, 텅 빈 공간에 관객이 물방울 스티커를 붙여 완성하는 ‘소멸의 방’은 증식과 소멸을 화두로 삼은 작품이다.

○ ‘쿠사마 야요이’전

5월 4일∼6월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휴관일 없음). 어린이 8000원, 청소년 1만 원, 어른 1만5000원. 02-580-1300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쿠사마 야요이#A Dream that I dreamed#무한 거울의 방#소멸의 방#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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