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현실… 꿈에서 길을 찾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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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대 출신 소설가 이치은 5년만에 장편

5년 만에 장편 ‘노예 틈입자 파괴자’를 펴낸 서울대 공대 출신 소설가 이치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5년 만에 장편 ‘노예 틈입자 파괴자’를 펴낸 서울대 공대 출신 소설가 이치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남의 꿈에 드나드는 틈입자가 있다. 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가 남의 꿈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 꿈의 주인은 말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치은(43)의 장편소설 ‘노예 틈입자 파괴자’(알렙)는 느닷없이 말을 잃은 뒤 실종된 한 남자를 추적하는 과정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며 긴박하게 펼쳐진다.

작가는 2009년에 펴낸 장편 ‘비밀경기자’에서도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꾸는 ‘마음속의 마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7일 만난 작가는 “현실에서 내가 처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자유로움이 발현되는 꿈에 집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1998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현재 외국계 화학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쓴다. “돈을 벌기 위해 쓰고 싶지는 않았다. 쓰고 싶을 때 쓰는 방식으로는 가족의 삶을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장인으로 산다. 회사 생활은 인내와 망각으로 버티면서 글은 즐겁게 쓴다.”

작가에게 이번 소설의 아이디어를 준 것은 큰아들(12)이었다. 어린 시절 아들이 잠을 자기 전에 그랬다. “아빠, 자꾸 무서운 꿈을 꿔요. 내 꿈으로 좀 와주세요.” 이 말 덕분에 남의 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매혹적인 모티브를 떠올리게 됐다.

여기에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의 양은 늘어가지만 정작 소통의 핵심인 내용은 부차적으로 변해간다는 문제의식이 더해졌다. “소통의 형식만이 남고 그 내용은 사라져서 결국 껍데기뿐인 소통의 공해 속에 인간들이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서 언어를 파괴하고 꿈을 통해 소통하려는 파괴자라는 인물이 태어났다.”

이 소설의 끝부분에는 6장에 걸쳐 빽빽하게 주(註)를 달아 놨다. 주가 본문을 압도하는 프랑스 작가 알랭 로브그리예의 장편 ‘되풀이’에서 형식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이수형은 “언어와 꿈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경계를 넘어선 낯선 세계로 이끈다”고 평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치은#노예 틈입자 파괴자#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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