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엔 화를 막고자 하는 염원 담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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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화센터 경주서 ‘민화포럼’

김홍도가 호랑이를,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 동아일보DB
김홍도가 호랑이를,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 동아일보DB
“착하며 성스럽고 문무를 겸비하고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지혜롭고도 인자하며 엉큼스럽고 날래며 세차고 사납기가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연암 박지원의 소설 ‘호질’)

한국에서 호랑이 그림은 그 뿌리가 길고도 깊다. 선사시대의 울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부터 고구려 고분벽화나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신까지 여러 유적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조선시대엔 호랑이를 소재로 한 민화가 대량 제작됐다.

한국민화센터 주최로 지난달 28, 29일 경북 경주시에서 ‘경주민화포럼 2014-왜 다시 호랑이인가’가 열렸다. 이원복 경기도박물관장이 ‘조선시대 호랑이 그림의 특징’을,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이 ‘한국의 호랑이 민화’를 발표했다. 미국 신시내티미술관의 중국계 큐레이터 허우메이 송은 ‘중국의 호랑이 그림’을 소개했다.

한국과 중국에선 호랑이가 정통 회화의 모티브임과 동시에 다양한 생활문화의 아이콘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호작도(虎鵲圖)다. 영물인 호랑이와 길조인 까치의 조합은 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인기 소재였다. 윤 관장은 “언제부터 등장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길흉화복을 주관하는 대상으로 호랑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화를 막아준다는 호랑이 그림은 종종 복을 집안에 불러들인다는 용 그림과 나란히 벽에 걸렸다.

중국에선 정치적 메시지로 쓰이기도 했다. 명나라는 ‘추우(騶虞)’라는 상상 속 호랑이가 인기였다. 추우는 시경에 ‘검은색 줄무늬에 몸보다 긴 꼬리를 지닌 상서로운 백호’로 등장한다. 송 큐레이터는 “영락제가 왕위 찬탈의 명분을 얻으려 태평성대에 출몰한다는 추우를 적극 ‘홍보’한 것이 계기”라고 말했다.

조선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처음 이름을 알린 이는 문인화가 고운이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고운의 ‘백액대호’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호랑이 그림의 정형을 성립한 이는 단원 김홍도로, 그가 호랑이를 그리고 표암 강세황이 소나무를 그린 ‘송하맹호도’와 수월 임희지가 대나무를 친 ‘죽하맹호도’는 후세의 표준이 됐다. 이 관장은 “중국의 호랑이 그림이 형태보다 의미를 중시한 데 비해, 조선 호랑이 그림은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민화도 독특한 전통을 형성했다. 진짜 호랑이 가죽을 펼쳐놓은 듯 그린 호피도는 중국이나 일본에선 찾을 수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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