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죽는 게 나은 인생?…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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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최진영 지음/248쪽·1만2000원/실천문학사

‘이 인간,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한 남자의 인생이 있다. 그의 이름은 원도. 직장에서 횡령한 돈으로 투기를 하다 여러 사람을 파산시키고 경찰에 쫓기는 몸이다. 도피 생활 중에 한 남자를 도로로 떠밀어 교통사고로 죽게 만들어 살인 혐의까지 더해졌다. 빼돌린 재산의 명의자인 아내는 딸과 함께 잠적해 연락조차 끊겼고, 간경화증에 걸려 수시로 피를 토하는 원도. 그가 은신처로 택한 여관 주인조차 그의 얼굴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곤 “남 장사하는 곳에서 이상한 짓(자살) 하지 말라”고 경고할 정도다.

소설은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많아 보이는 주인공 원도가 스스로에게 묻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원도는 자신의 인생이 뒤틀린 순간을 찾으려고, 또 죽어야 하는(동시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다. 원도의 독백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의 이 소설은 영화 ‘박하사탕’을 떠올리게 한다. 방금 원도의 입에서 튀어나온 듯한 짧은 단문이 연속되며 주인공의 날 선 심리를 생생히 보여준다.

부모에게서, 연인에게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정당하고 그 반발로 ‘원하는 것을 소유하는 그 순간만’을 기다리며 ‘빈틈과 불합리와 부조리가 있는 곳’에서 승산을 찾아온 원도의 지난 삶은 점점 알게 될수록 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욕망과 경쟁으로 점철된 현대인의 삶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수록 그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의 제목은 매우 중의적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 같은 물을 나눠 마셨음에도 아버지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원도의 의문인 동시에, 현재 벼랑 끝에 내몰린 원도가 스스로에게 묻는 자조적 질문이다. 아니 이 질문이 정말 중의적인 것은 질문의 표적이 원도만이 아닌 독자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죽지 않았는가. 우리는 왜 사는가.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인생#자살#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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