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조소-설치미술-미디어아트… 4색 장르 4색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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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후보 4인 기획전

[1] 신미경 씨의 ‘트랜슬레이션 비너스 프로젝트’. 고대 그리스 대리석상을 흉내 낸 자세를 취한 작가 자신을 모델로 삼아 비누로 조각했다. [2] 조해준 씨의 ‘사이의 풍경’. 도깨비를 만났다는 아버지 친구의 경험담을 토대로 28분 길이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3] 공성훈 씨의 ‘흰머리’.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친구의 뒤통수를 캔버스 복판에 커다랗게 그려 넣어 이질감을 살렸다. [4] 함양아 씨의 ‘새의 시선’. 옛 서울역을 배경으로 비둘기의 시선에서 도시 공간을 바라봤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 신미경 씨의 ‘트랜슬레이션 비너스 프로젝트’. 고대 그리스 대리석상을 흉내 낸 자세를 취한 작가 자신을 모델로 삼아 비누로 조각했다. [2] 조해준 씨의 ‘사이의 풍경’. 도깨비를 만났다는 아버지 친구의 경험담을 토대로 28분 길이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3] 공성훈 씨의 ‘흰머리’. 검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친구의 뒤통수를 캔버스 복판에 커다랗게 그려 넣어 이질감을 살렸다. [4] 함양아 씨의 ‘새의 시선’. 옛 서울역을 배경으로 비둘기의 시선에서 도시 공간을 바라봤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막내아들 해준아. 아버지가 너에게 말 못한 것이 있어 항상 꺼림칙했는데 오늘 밝히게 돼 기쁘다. 이 그림을 층계 창고에서 찾아내 먼지 털고 여백을 만들어 이 글을 쓴다. 1960년대 초에 그려 국전에 출품해 낙선한 작품이다. 네가 있어 아버지 노년에나마 빛을 보게 됐구나. 고맙다 아들아. 사랑한다.”

10월 20일까지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13’전 참여 작가 4인 중 조해준 씨(41)의 ‘사이의 풍경’ 전시실 초입에 세워진 유채화 ‘낙선작’ 캔버스 하단에 쓰인 글이다. 조 씨는 화가의 꿈을 접고 미술교사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려 온 아버지 조동환 씨(78)와 2002년부터 독특한 공동작업을 하고 있다. 자신 또는 아들의 삶에서 얻은 사연을 담아 아버지가 드로잉을 그려내면 아들이 목재 등을 이용한 설치작품에 그것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세상만사에 대해 소통해낸 이들 부자의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핏 ‘에이, 이게 무슨 미술품이야’ 싶다가도 꼼꼼히 뜯어보면 “작품의 논리가 견고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심사위원단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부터 ‘올해의 작가’전 진행을 자체 선정 방식에서 외부 심사위원에 의한 선발과 시상 방식으로 바꿨다. 미술계 주요 인사 10명으로부터 작가 추천을 받은 뒤 국내외 전문심사위원 5명이 그중 4인을 추려냈다. 심사위원단은 개별 전시실에서 작가들이 마련한 최근작 기획전을 평가해 9월 중순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를 최종 발표한다. 올해 전시에는 회화 조각 설치작품 영상물 등 110여 점이 출품됐다.

‘겨울 여행’이라는 주제를 들고 나온 공성훈 씨(48)는 가로 1.8m, 세로 2.2m의 캔버스 밖으로 와락 튀어나올 듯한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한다. 소재는 대개 하늘과 산, 바다이지만 범상한 풍경화가 아니다. 바닷가 기암괴석의 웅장한 풍광 한구석에 처량하게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우는 사내를 숨겨 놓는 식으로 모든 작품에 슬쩍 딴청을 부려 놓았다. 김경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한국 사회의 속된 풍경을 고전적 스타일로 담아내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해 왜곡돼 가는 자연의 모습을 날카롭고 진지하게 성찰했다”고 말했다.

서울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작업하는 신미경 씨(46)가 내건 주제는 ‘트랜슬레이션(translation): 서사적 기록’이다. 견고한 재질의 고전 유물을 부드러운 비누로 옮겨 빚어내는 작업을 통해 꾸준히 추구해 온 ‘번역’이라는 화두를 정리해 내놓았다. 야외에서 비바람에 녹아내리는 비누 조각을 매개로 가치의 영속성에 대한 의문을 끌어낸다. 조각상의 얼굴을 작가의 얼굴로 바꾸어 놓는 식의 의역(意譯)도 흥미롭다.

함양아 씨(45)의 ‘난센스 팩토리’ 전시실은 좁은 출입구를 통과하자마자 기우뚱거리며 움직이는 바닥이 관람객을 당황하게 만든다. 작가는 작은 주제별로 구분된 방마다 설치한 영상물과 조각, 설치작품을 통해 ‘밸런스의 위기’에 빠진 현대사회의 이면을 조명한다. 비둘기의 눈에 비친 도시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소형 카메라를 비둘기 머리에 설치하는 등 독특한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였다. 5000원. 월요일 휴관. 02-2188-60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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