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밴드” 원조 그룹사운드 뭉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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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열리는 ‘언제나 청춘―더 쇼’에 출연하는 음악인들이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를 합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천(트리퍼스), 조용남(히식스), 최이철(사랑과평화), 노광일(키보이스), 옥희, 윤항기(키보이스), 이진(바보스). “여기 있는 사람들 정신연령이 다 10대여. 젊은 세대보다 좀 더 오래 살았다뿐이지. 하하.”(옥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음 달 열리는 ‘언제나 청춘―더 쇼’에 출연하는 음악인들이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를 합주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경천(트리퍼스), 조용남(히식스), 최이철(사랑과평화), 노광일(키보이스), 옥희, 윤항기(키보이스), 이진(바보스). “여기 있는 사람들 정신연령이 다 10대여. 젊은 세대보다 좀 더 오래 살았다뿐이지. 하하.”(옥희)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당신을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건물 지하. 장마가 몰고 온 눅눅한 습기가 밴 좁은 계단을 내려가 연습실 문을 열어 제치자 상쾌한 목소리와 호쾌한 록 밴드 연주 소리가 ‘파파팍’ 하고 고막에 뛰어 들어왔다.

레이 찰스의 노래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1962년·원곡자 돈 깁슨)를 열창하는 이는 키보이스의 윤항기다. 고개를 돌리니 히식스의 조용남이 베이스 기타를 들었고, 트리퍼스의 이경천이 건반 앞에 앉아 있다. 윤항기의 보컬이 잠깐 멈추자 그 가락을 사랑과평화의 최이철이 이어받아 끈적한 블루스 기타 솔로로 다시 뿜어낸다.

다음 달 9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리는 ‘언제나 청춘-더 쇼’ 콘서트(6만6000∼7만7000원·02-586-5868) 연습 첫날 풍경이다. 첫 합주였지만 오랜 세월 한무대에 서온 베테랑 밴드의 연주처럼 차지고 구성졌다.

이 콘서트는 오랜만에 1세대 그룹사운드 연주자들이 다시 모여 여는 공연이다. 키보이스, 히식스, 트리퍼스, 사랑과평화, 서울패밀리의 원년 멤버들에 가수 장미화, 옥희가 힘을 보탠다. 국내 첫 디스코 DJ로 불리는 이진이 진행자와 코러스를 맡았다. 이진은 밴드 바보스에서 기타와 건반을 연주했지만 코믹한 입담과 선곡으로도 유명해졌다. 여전히 나이트클럽에서 음악을 트는 ‘현역’이다.

휴식 시간에 대기실에 둘러앉은 멤버들은 “근래에 쎄시봉, 쉘부르 같은 옛 포크 음악에 대한 재조명은 많았지만 그룹사운드의 원류에 대한 재조명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식적으로는 이런(1세대 그룹사운드가 모인) 자리가 처음이에요. 2∼3년에 한 번씩이라도 이렇게 해왔으면 지금 케이팝 모양새가 더 진보된 스타일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는 그룹사운드인데 그 뿌리가 배추꼬리 잘리듯 잘렸죠.”(윤항기)

이번 무대에는 ‘옛날 극장식 공연 연출’도 적용된다. “1960년대 당시 서울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룹사운드 경연대회가 자주 열렸거든. 무대가 돌아가면서 한 밴드에서 다음 밴드로 교체됐어요. 그 교체 타임에 많이 쓰였던 ‘그린 어니언스’(1962년·부커 티 앤드 더 엠지스) 같은 곡을 틀면서 제가 멋지게 소개도 할 거예요.”(이진)

윤항기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레이 찰스 분장을 한 채로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를 부를 계획. 장미화는 ‘미키’(1981년·토니 배질)를 부를 때 입을 치어리더 의상을 동대문 시장에서 구입할 생각에 부풀어 있다. 옥희는 ‘쉬 워크스 하드 포 더 머니’(1983년·도나 서머)를 부른다. “온 세계가 돈 때문에 난리 났잖수. 관객들한테 이 노래 화음 다 부르게 시킬 거야.”(옥희)

1970년대 중반에 ‘옛님’ ‘나를 두고 아리랑’을 크게 히트시킨 트리퍼스도 30여 년 만에 처음 자기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큰 인기를 끈 보컬 김훈의 도미(渡美)와 멤버들의 사망으로 트리퍼스에는 이경천(기타)만 남았다. “서울 강남에서 라이브 클럽을 운영 중이지만 거기선 외국 노래만 부르죠. ‘옛님’ ‘나를 두고 아리랑’을 트리퍼스란 이름으로 부르는 건 70년대 이후 처음이에요. 기타 연주와 노래를 함께 해야 하는데, 노래가 될지 모르겠어. 허허.”

이진은 “1960년대 중반 미8군 위문 밴드로 시작한 연주인들은 서울 명동의 미도파 살롱에 모여들었다. 그룹사운드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겐 천당 같은 곳이었다”면서 “쎄시봉, 쉘부르보다 더 전문적으로 라이브 연주가 이뤄지던 공간이었는데 이곳이 좀 더 조명됐으면 한다”고 했다. “요즘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도 있지만, 꽃보다 청춘이죠!”

‘맏형’ 윤항기부터 ‘막내’ 최이철까지 모인 6학년(60대)과 7학년(70대) 모임이지만 히식스의 김홍탁은 건강상의 이유로, 최헌(1948∼2012)은 이 세상에 없어 참여하지 못한다. 멤버들은 잠시 후 하나둘씩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아이 캔트 스톱 러빙 유’는 계속됐다.

“시간이 다친 마음을 치료해줄 거라고들 했지만/우리 헤어진 뒤로 시간은 멈춰버렸죠….”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남지희 인턴기자 성균관대 경영학 졸업
#록 밴드#그룹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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