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젊은 부유층 패션감각 핵심, ‘CEO보다 록스타처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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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도 출신 디자이너 필립 플레인의 스타일 철학

이달 초 방한한 디자이너 필립 플레인(가운데)이 모델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록 시크 무드를 고급스럽게 풀어내는 플레인은 “내가 사고 싶은 옷을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제공
이달 초 방한한 디자이너 필립 플레인(가운데)이 모델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록 시크 무드를 고급스럽게 풀어내는 플레인은 “내가 사고 싶은 옷을 디자인한다”고 말했다. 갤러리아백화점 제공
“갑자기 성공했다고요? 14년을 노력해서 이제 수면 위에 오른 거죠.”

이달 초 방한한 디자이너 필립 플레인(35)에게 ‘짧은 시간 안에 글로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브랜드 론칭 10년 만에 12개국에 단독 매장 20여 개를 열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그는 “정식 론칭 전부터 수없는 야근과 잠 못 이룬 밤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며 “거대 패션그룹들이 지배하는 패션업계는 늙고 지루해졌고, 젊은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필립 플레인’은 혜성처럼 나타나 서울 트렌드세터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다. 지난해 9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생겼고, 이윽고 올해 3월 국내 백화점 최초로 갤러리아 명품관에 입점했다. 한국에 선보인 지 1년도 안 됐지만 ‘록 시크’ 무드를 앞세운 가죽재킷과 해골 액세서리 등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독특한 미키마우스 가죽 재킷이 품절돼 못 산 한 소비자는 두 벌을 사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더 드릴 테니 팔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갤러리아 백화점 관계자는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한 명품관 3층에서 매출 1등을 달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플레인의 이력은 다른 디자이너들과 좀 다르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는 “물건을 사고, 집을 계약하고, 사업을 시작하는 모든 일생의 순간순간에 법이 관여한다고 생각했다”며 “꼭 변호사가 되어야겠단 생각은 없었고,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은 법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감성은 디자인과 건축, 패션의 세계에 있었다. 스물한 살이던 그는 1999년 재미로 친구와 가족들을 위해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그래서 아예 가구 회사를 차렸다. 최고급 가죽을 사서 소파를 만들고 공간을 새롭게 바꾸는 일을 했다. 남는 가죽이 아까워 가방을 만들어 봤다.

2003년 그에게 예기치 않은 기회가 왔다. 독일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여한 모에샹동이 라운지 디자인을 맡겼고, 플레인은 그 라운지에서 소파를 만들고 남은 가죽으로 제작한 가방을 팔았다. 소비자들은 신선한 그의 디자인에 열광했다. 가능성을 본 플레인은 2004년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필립 플레인’을 본격적으로 론칭했다.

그는 “가구, 가방, 패션 모두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내가 소비자라면 이런 것을 사겠다’는 생각을 하고 만들면 실제 소비자들이 열광했다”며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가구 디자인을 시작한 건 아니지만 하루 24시간을 디자인 작업에 쏟다 보니 사람들이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플레인은 인터뷰 내내 ‘내가 곧 젊은 소비자’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패션계가 지루해졌다고 했다. 20, 30대 젊은 부자들은 은행가나 최고경영자(CEO)처럼 입고 싶지 않은데도 전통에 얽매인 고급 브랜드들은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

그는 “젊은 부자는 은행가가 아닌 록 스타처럼 입길 원한다”며 “나는 젊고, 대기업에 속한 디자이너가 아니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오히려 패션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패션산업에서 ‘태생부터 다른(born to be different)’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인들이 독특한 디자인을 알아줘서 감사하다”며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매장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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