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예술은 정치인들의 속셈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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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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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공연예술의 대모 프리 라이젠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예술은, 특히 동시대 예술은 정치와 대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그걸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는 정치인들의 감춰진 속셈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밖에선 꼭 전쟁 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와중에도 태연자약하게 삶과 예술을 즐기는 서울 사람들이야말로 멋진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유럽 공연예술에 혁신적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유럽 동시대 공연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프리 라이젠(63·사진)은 예상대로 여장부였다. 이달 초 서울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진행된 1시간 반의 인터뷰 내내 에스프레소 더블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시며 담배를 입에서 놓지 않았다. “커피건 담배건 술이건 공연이건 헤비한 걸 좋아한다”는 그는 6일의 방한기간에 한국 작가의 공연 작품 8편과 다큐멘터리 영화 1편을 찾아봤다. 공연 8편 중 2편은 두 번씩 관람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뭐였느냐는 질문에 뜻밖의 작품이 언급됐다.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에 초청된 신예 김보용의 ‘텔레워크’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해질 무렵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지붕 위에 모인 관객에게 맞은편 청계산 산기슭을 발광다이오드(LED) 반사판 등불을 들고 천천히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통해 근시(近視)적 삶만 사는 도시인에게 원시(遠視)의 체험을 안겨주는 공연이다.

“그날 날씨가 몹시 추워 발을 동동 구르며 봤는데 동양화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깊은 명상에 빠지게 만든 공연이었습니다. 수많은 아시아권 작가를 발굴해왔는데, 특히 한국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 중 어느 한쪽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양자를 조화롭게 접목시키는 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일반인에겐 낯설다. 하지만 공연기획자들에겐 전설적 존재다. 네덜란드어(플라망어)를 쓰는 벨기에 플레미시 지역 출신인 그는 유럽문화의 변방이었던 벨기에를 현대예술의 중심지로 만든 핵심 인사로 꼽힌다. 1980∼1991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싱켈 극장을 창립하면서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윌리엄 포사이스, 로메오 카스텔루치, 알랭 프라텔 같은 작가들을 적극 발굴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92년엔 벨기에 쿤스텐페스티벌(KFDA)을 창립하고 14년간 예술감독을 맡아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작가들을 발굴한 탁월한 안목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를 토대로 중동의 국제 페스티벌인 ‘미팅 포인트’의 큐레이터, 독일의 ‘시어터 데어 벨트’ 최초의 비독일인 예술감독도 지냈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아시아예술극장 예술감독에 임명되면서 한국이 아시아 지역 동시대 예술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지금 그는 오스트리아 빈 페스티벌 예술감독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광주가 제가 사랑하는 아시아권 동시대 예술의 허브가 되겠다며 저를 불러줘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부임해 국내외 전문가를 초빙해 마스터플랜을 세워놓고 보니 제 나이에 그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20∼30세는 젊은 예술감독이 이를 실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작년 여름에 떠났습니다. 빈 페스티벌은 역사가 62년 된 축제라 큰 부담이 없어 올해부터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

동시대 예술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동시대 예술이란 뭐냐고.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익숙지 않은 것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봐, 정신 차려(Hey, Wake Up)’라거나 ‘다시 한 번 생각해봐(Think twice)’라고 말해주는 것이죠.”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프리 라이젠#텔레워크#아시아예술극장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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