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봄바람에 실린 시인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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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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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시인 신동엽 44주기… 5월 3일 개관 앞둔 부여 신동엽문학관을 찾다

문학관 앞뜰에 위치한 조형물. 신동엽의 시가 깃발처럼 달려 있다. 임옥상 조각가의 작품. 부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문학관 앞뜰에 위치한 조형물. 신동엽의 시가 깃발처럼 달려 있다. 임옥상 조각가의 작품. 부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고, ‘껍데기는 가라’고 분연히 외쳤던 시인 신동엽(1930∼1969). 그의 저항 시들은 1960년대 주로 발표됐지만 1980년대에 더 많이 읽혔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간암으로 요절한 그가 남긴 시어들은 혼탁한 요즘 시대에도 명징하게 살아있다.

최근 시인을 기리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시인의 기일(4월 7일)에 맞춰 ‘신동엽 시전집(詩全集)’(창비·사진)이 나왔으며 5월 3일 고향인 충남 부여군에 그의 이름을 딴 ‘신동엽문학관’이 문을 연다. 우리 곁으로 한걸음 다가온 그를 마중하러 10일 부여를 찾았다. 시전집 출간에 참여한 김윤태 신동엽기념사업회 상임이사(문학평론가)가 도움말을 해줬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12. 군청 인근의 한 주택가 골목을 돌아가니 신동엽문학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상 1층, 지하 1층과 옥상 정원으로 구성된 문학관(연면적 800m²)은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 2009년 착공해 4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현대적으로 지어진 문학관 앞 편에는 파란색 기와를 얹은 신동엽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초가집이었지만 1985년 복원하며 기와를 얹었다. 신동엽은 농민의 아들로 1남 4녀 중 맏이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비가 지원되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한 속 깊은 청년이기도 했다.

신동엽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에 들어서는 신동엽문학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이 문학관은 5월 3일 개관식을 하고 관람객을 맞는다.
신동엽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에 들어서는 신동엽문학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이 문학관은 5월 3일 개관식을 하고 관람객을 맞는다.
문학관은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주요 전시물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조각가 심정수가 만든 ‘신동엽 흉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1층 상설전시실에는 시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의 초고가 전시돼 있고 성적표, 편지, 출간 도서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천상병 시인이 지었다는 시 ‘곡(哭) 신동엽’도 보였다. 신동엽이 부인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78)과 젊은 시절 주고받은 연애편지도 눈에 띈다. “인 여사가 워낙 꼼꼼하게 자료를 보관해 와서 귀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습니다.”(김윤태 평론가)

신동엽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해 등단했다. 1967년 1월 ‘현대문학전집’ 제18권으로 기획된 ‘52인의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한 7편을 실은 그는 그해 12월 무려 4800여 행에 이르는 장시 ‘금강’을 선보이며 시인으로서 만개한다. 동학혁명과 3·1운동, 4·19혁명으로 이어진 민초들의 거센 목소리를 시로 담아냈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민주청년동맹 선전부장을 맡은 그의 이력이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시인은 사후에도 한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신동엽 전집’은 1975년 간행됐지만 두 달도 못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판매금지 조치 당했고 긴급조치가 풀린 1980년 증보판을 냈지만 다시 판금되기도 했다.

“아직도 신동엽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저는 틀리다고 봅니다. 그의 시편을 보면 오히려 아나키스트나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에 가까워요. 초기 그의 시에는 ‘완충’ ‘정전’이라는 말이, 그리고 이후로는 ‘중립’이라는 시어가 많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김윤태 평론가)

문학관에 들어서면 먼저 만나게 되는 신동엽 흉상. 심정수 조각가의 작품.
문학관에 들어서면 먼저 만나게 되는 신동엽 흉상. 심정수 조각가의 작품.
새 시전집에 들어간 시들은 강형철 김윤태 평론가가 육필 원고를 일일이 살펴 오류를 바로잡았다. 시인의 30주기에 맞춰 내려던 시집이 40주기를 넘겨 나왔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흐른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신동엽을 잊고 지낸 탓이리라.

5월 3일 오후 2시에는 문학관 개관식이 열린다. 유품 전달식, 흉상 제막식, 헌화식이 열린다. 6·25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안고, 민중의 각성과 행동을 촉구했던 신동엽.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 시인의 결연한 외침이 들리는 듯했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부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동엽#신동엽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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