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전에 목숨을 건 사람들… 지난한 삶, 유쾌한 버무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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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미우라 시온 지음/권남희 옮김/336쪽·1만3500원/은행나무

은행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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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나 만화를 볼 때면 가끔 질투 날 때가 있다. 특수 직종을 전문적으로 파헤치면서도 어렵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장인 정신을 가슴 찡하게 전할 때다. 신선한 소재와 유머, 그리고 휴머니즘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읽고 나면 기분 좋은 충만감이 드는 작품. 이 장편 소설을 읽고서도 딱 그랬다.

그렇기에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큰 반응을 얻었다. 60만 부가 넘게 나갔고 일본의 전국 서점 직원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서점 대상도 차지했다. 2006년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 상을 받은 작가는 나오키 상과 서점 대상을 함께 차지한 첫 번째 작가라는 영예도 얻었다.

소설은 일본어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 얘기를 다룬다. 대형 출판사 겐부쇼보의 번듯한 본관 옆, 60년도 넘은 목조 별관에는 사전편집부만 홀로 떨어져 있다. 사전 출간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 출판사가 기피하는 사업.

하지만 사전편집부에는 사전 편찬에 인생을 건 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대도해(大渡海)’라는 23만 어휘의 사전을 새로 편찬하는 작업에 착수하지만 곳곳에 암초가 숨어 있다. 경영진이 수익성을 내세워 작업을 중단시키거나 다른 돈 되는 사전의 개정판 작업 지시를 내리는 것. 대도해 작업에서도 ‘혹 빠진 어휘는 없나’, ‘어휘에 대한 설명은 정확한가’ 일일이 따지는 과정도 지난하다.

소설은 향수를 자극한다. ‘종이 사전을 펼친 적이 언제였던가’ 하는 단상부터 성(性)과 관련된 단어를 남몰래 찾아봤던 까마득한 옛날의 추억까지. 잊고 지냈던 종이 사전에 대한 추억이 반갑게 떠오른다. 또한 ‘정확하고 풍부한 어휘의 사용이 왜 중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소설 중 편집자 기시베는 이렇게 정리한다.

‘많은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모으는 것은 일그러짐이 적은 거울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일그러짐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마음을 비추어 상대에게 내밀 때, 기분이나 생각이 깊고 또렷하게 전해진다.’

사전을 만드는 이들은 현재인의 대화뿐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대화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무려 15년 넘게 걸린 대도해의 편찬 과정, 편찬자들의 일과 사랑, 결혼, 죽음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소설은 전반적으로 유쾌하다. 특별한 언어 감각을 갖고 있지만 엉뚱한 마지메, 틈만 나면 새 어휘를 메모하는 마쓰모토 선생, 경박한 언어와 행동을 일삼는 니시오카 등 캐릭터의 개성이 생생하게 드러나 인물들에게 정감이 생길 정도다. 다만 사전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며 일본어의 미묘한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독자에게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배를 엮다#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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