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악보 뒤집으니 베토벤이…

  • Array
  • 입력 2013년 3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①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②베토벤 현악4중주 작품 135 끝악장 악보. ①은 첫 음부터 두 음 아래(단3도)→세 음 위(완전4도)→다시 두 음 아래→세 음 위로 진행된다. ②의 B(‘그래야만 한다!)에서 3, 4번째 음을 하나로 보면 ①과 방향은 반대로, 각 음의 간격은 같게 대칭으로 뒤집힌 진행을 이룬다.
①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②베토벤 현악4중주 작품 135 끝악장 악보. ①은 첫 음부터 두 음 아래(단3도)→세 음 위(완전4도)→다시 두 음 아래→세 음 위로 진행된다. ②의 B(‘그래야만 한다!)에서 3, 4번째 음을 하나로 보면 ①과 방향은 반대로, 각 음의 간격은 같게 대칭으로 뒤집힌 진행을 이룬다.
국립오페라단이 21∼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베르디 ‘팔스타프’에서는 막이 오르기에 앞서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가 연주됐습니다. 최근 별세한 이운형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을 추모하는 연주였습니다.

제목이 왜 ‘수수께끼’ 변주곡일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낱낱의 변주(變奏)가 작곡가의 지인들을 표현했습니다. 그 주인공들을 맞혀 보라는 게 첫 번째 수수께끼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 곡 전체에 작곡가가 숨겨놓은 비밀 또는 암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지만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엘가 코드(code)’입니다.

저도 학생 시절 이 수수께끼에 매혹됐습니다. 주제 선율을 앞뒤로 뒤집어보기도 했고, 계이름이 ‘도-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엘가와 친분이 있었던 여인 도라 페니와 관계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가는 다른 대가가 내놓은 또 다른 수수께끼에 자기를 결부시킨 게 아닐까?” 순간 앗,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베토벤은 마지막 현악4중주인 16번 작품 135의 끝악장 악보에 알쏭달쏭한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그래야만 하는가(Muss es sein)?’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 답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습니다. 심오한 예술적 방향의 모색이라는 주장부터, 하녀의 급료를 올릴 것인지 고민한 것이라는 설까지….

저는 그 악보를 뒤집고 비틀어 보다가 선율의 아래위를 뒤집는 ‘반전’ 기법을 이용해 봤습니다. 70년 전 바로 오늘 별세한 라흐마니노프가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제18변주에서 사용했던 수법입니다. 반음 내려가던 것은 반음 올라가는 것으로, 세 음 아래로 가던 것은 세 음 위로 가는 것으로 뒤집는 식입니다. 그 결과는? ‘수수께끼 변주곡’ 주제 처음 다섯 음의 진행을 뒤집어 보니 베토벤의 ‘그래야만 한다’ 동기 여섯 음의 진행과 똑같았습니다.

<음원제공 낙소스>
수수께끼 변주곡의 아홉 번째 변주인 ‘님로드’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첫 부분 계이름 ‘(미)-도-파-레-솔’의 앞뒤를 거꾸로(역행) 연주하면 솔-레-파-도가 됩니다. 역시 ‘그래야만 한다’ 동기의 네 음과 같습니다. 저는 수수께끼를 푼 것일까요. 여러 가설에 하나를 더 보탰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엘가의 수수께끼는 베토벤의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나왔다!” 최근 별세한 황수관 박사가 애용한 말을 빌리자면 “사실이 그렇다기보다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http://classicgam.egloos.com/198465

유윤종 gustav@donga.com
#수수께끼 변주곡#엘가 코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