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닭벼슬보다 못한게 중벼슬이라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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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으로 불교 대중화 이끌어

수불 스님은 곧잘 야구에 견주어 불교를 설명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경기장에서 야구를 본 것이 선동열과 최동원의 15회 연장 무승부(1987년) 혈투였다. 난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수불 스님은 곧잘 야구에 견주어 불교를 설명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경기장에서 야구를 본 것이 선동열과 최동원의 15회 연장 무승부(1987년) 혈투였다. 난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머릿속은 치기 쉬운 공인데 계속 ‘돌직구’만 던진 겁니다.”

수행만 하다 죽겠다던 그가 1989년 부산에 안국선원을 열었다. 선방 수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간화선(看話禪·화두로 수행하는 참선)의 대중화를 위해서였지만 선원 개원 뒤 1년 6개월 동안 시쳇말로 파리만 날렸다.

1일 서울 안국동 거처에서 만난 수불 스님(61)은 2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허허 웃었다. “남 가르치겠다고 저잣거리에 나왔는데 거꾸로 세상공부를 많이 했죠. 그때 아, 부처님처럼 어깨에 힘 빼고 모든 사람이 칠 수 있는 공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깨달아, 가장 쉽게 전했다는 것이 바로 부처님 법이죠.”

○ 누구든지 칠 수 있는 공 던져야

현재 안국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의 대표적인 참선 수행처가 됐다. 부산과 서울, 경남 창원시에 선원이 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분원이 있다. 매년 2000여 명이 간화선 수행을 체험하고 있다. 호흡을 위주로 한 위파사나 등 남방불교 수행법이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위파사나가 부처 당시의 정통 수행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눈에 쉽게 들어오지.”

―자질, 근기(根氣)라는 말이 있다. 일반인들에게 간화선은 어려운 것 아닌가.

“아니다. 세월이 흘러 농축된 북방불교의 간화선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시 태어났다. 그 ‘맛’을 접한 사람들은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몇 시간 전, 스님은 동국대 선센터에서 열린 간화선 집중수행 프로그램 참석자들에게 “되든 안 되든 그냥 화두를 들라”고 조언했다.

―요즘 시대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있는 말이다.

“어수선한 주변 환경과 쓸데없는 집착이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갑갑해도 밀어붙이면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깨달음이 온다.”

○ 중 벼슬, 닭 벼슬보다 못하다


참선 대중화와 폭넓은 보시행으로 종단 안팎에서 신망이 높은 스님은 지난해 5월 선거를 둘러싼 잡음 끝에 범어사 주지에 취임했다. 부산불교연합회장도 맡고 있다.

―꼭 범어사 주지가 되어야 했나.

“…. 미묘한 여러 이유가 있다.”

―스님이 특정 사찰의 주지라는 ‘그릇’에 갇혀 안타깝다는 말도 나온다.

“사판(事判·종단 행정 분야) 쪽으로는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범어사와 부산 불교 발전을 위한 고충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주지를 해 보니 어떤지.

“색다른 세계다.(웃음)”

―불교계의 계파와 문중 갈등이 오랜 숙제다. 이를 위한 탕평책 같은 게 필요하지 않나.

“한집안 식구끼리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수행 잘하는 분위기 만들고, 절집 찾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 주면 된다.”

―조계종은 자정과 쇄신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멀었다는 의견이 많다.

“중 벼슬은 닭 벼슬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수행이 최우선이라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종단은 바로 설 수 있다.”

○ 오리다리는 짧고, 학다리는 길다

스님은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개신교계의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와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부산 불교를 대표해 환영하고, 동시에 불교를 포함한 우리 문화를 알릴 기회라고 생각한다. WCC에 있는 분들과 참석자들의 템플스테이 참여 등 종교 간 평화를 위한 길을 찾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대선후보는 사찰로는 유일하게 모두 범어사를 찾았다. 대선 전후 과정과 최근 정치권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스님은 “정치는 정치인들이 할 일”이라며 말을 아꼈다. 대신 요즘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했다.

“오리다리는 짧고, 학다리는 길다. 사람들은 어두운 것만 보고 부족한 것만 보면서 자기 탓, 남 탓하는 경우가 많다. 오리다리가 학다리처럼 길어지는 게 평등이 아니다. 불평등이 아닌 한 서로의 분수를 잘 알고 만족할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범어사#주지 수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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