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13]문학평론 ‘없음(無)으로서의 유토피아…’ 당선소감

  • Array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스무 살 여름밤의 수줍은 고백이 남아있다

임세화 씨
임세화 씨
일기도 쓰지 못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고,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내 안에 머물던 말과 기억들이 흩날려 사라졌던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나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 어렵고 조심스럽게 서툰 문장을 쓴다.

서른 살이 되는 순간을 간절히 바랐던 시간들도 있었다. 어쩐지 서른 살이란 내게 어른의 나이처럼 느껴졌다. 그땐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스물 언저리의 시간들이 내겐 너무 어렵고 버거웠다. 빨리 그 시간들을 건너뛰고만 싶었다.

사실은 지난 몇 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작년과 재작년, 올해의 기억들을 바르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그 시간들은 괄호 안에 뭉뚱그려진 채 생략되었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았고, 글을 쓰지도 못했고,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것도 어려웠다. 이상한 사춘기였다.

선생(先生)님,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말에 담긴 따뜻한 의미를 좋아하고, 그 말을 머금는 동안 입안에 남겨지는 둥근 여음(餘音)을 좋아한다. 긴 망설임 끝에 냈던 용기가 선생님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로는 지키지 못한 약속들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보면 거짓말이 되어 있어서 죄스러운 일이 많다. 긴 시간 동안 이상한 제자를 돌봐주시고 늘 토닥여주신 박광현 선생님께, 이제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 번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내게 펼쳐 보여주셨던, 그 환한 꿈같았던 기쁨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소설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던, 스무 살 여름밤의 수줍은 고백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아마도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고 말해도 될까. 그 처음으로 향했던 거칠고 서투른 고백을 보듬어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1984년 대전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