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결핍의 진창 뒤져 사금을 줍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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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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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낸 작가 김도언

문학은 아름답지만 문단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외롭고, 슬프고, 일견 냉혹하기도 하다. 김도언은 시인, 소설가, 편집자란 다양한 시각으로 문단의 현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꼬집는다. 이른아침 제공
문학은 아름답지만 문단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외롭고, 슬프고, 일견 냉혹하기도 하다. 김도언은 시인, 소설가, 편집자란 다양한 시각으로 문단의 현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꼬집는다. 이른아침 제공
한 출판사 대표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그는 “김도언이란 작가가 요즘 작가들 가운데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큰 것 같다”며 극찬을 이어간 것이다. 기자는 ‘가장’ ‘열정’ 등의 단어가 부담스러워 “좋은 작가지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김도언(40)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다른 몇몇 시인과 함께 집에 초대해 저녁을 겸한 술상을 대접한 적도 있다(막판에 김도언은 한 평론가와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했고, 기자는 옆집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올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인상은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쓰고 편집자(웅진문학 임프린트 ‘곰’ 대표)로 일하는 부지런한 문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나온 그의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이른아침·사진)를 보고 생각이 변했다. 문학에 대한 성실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이 따뜻하면서도 처연하게 다가왔다. 등단 14년차를 맞았지만 문학적 결기도 서 있다.

소설 6권을 낸 뒤 올 2월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으로 ‘망명’한 그는 시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이렇게 적었다. “시인은 행복해서도 안 되고 부자여서도 안 되고 인기가 많아서도 안 된다. (중략) 시는 혹독한 결핍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 결핍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이어서 참혹하다. 시 쓰기는 이 참혹의 진창을 뒤져 사금을 줍는 행위다.”

산문집은 2010년 1월부터 올 11월까지 작가가 주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소설이나 시가 쓰이지 않아도 작가는 어딘가에 꾸준히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왜 쓰는가. 글 쓰는 행위가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임을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되묻는 행위입니다. 자신과 다투고 불화하다가 결국 화해하고 마침내 용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활의 궁극에 해당하는 경지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느리게 질겅거린 뒤 힘겹게 삼킨다. 날카로운 가시들도 곳곳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문단 권력 문제를 다룬 대목은 이렇다. “지금 작가들은 어떤가. 문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문학 메이저 출판사 ‘빅4’(창작과비평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의 관리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 “한국 문단은 문학을 교환가치로 여기는 자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산업적 상상력이 문학 주체들의 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처음 만나는 길에 샌들을 신고 간 에피소드나, 7년 동안 한집에 살았던 신동옥 시인을 떠나보내는 감상을 적은 뭉클한 글도 있다. 김요일 류근 구경미 신승철 박장호 박후기 등 교류 문인들의 뒷얘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해가 지면’ ‘홍대나 합정, 좀더 나가면 공덕역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마시는’ ‘40대 전후 시인들’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답이 될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도언#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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