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15>이웃과 함께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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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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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수확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김윤안(金允安· 1562∼1620)이라는 조선 중기의 문인은 이런 아름다운 삶을 시로 노래하였습니다. 밤송이가 터지자 붉은 밤이 쏟아질 듯합니다. 볼이 발갛게 익은 대추도 가지가 휠 만큼 열렸습니다. 장대를 가지고 밤과 대추를 털어 바구니 가득 담습니다. 인정이 훈훈한 시인은 이것을 혼자 먹지 않습니다. 아내더러 빨리 막걸리를 거르라 부탁하고는 아이를 시켜 뒷집 노인을 불러 함께 맛을 보자고 합니다.

태평성세의 재상 황희(黃喜)가 불렀다는 시조.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떨어지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가을을 맞아 대추는 볼이 붉어지고 밤송이가 벌어져 밤알이 떨어집니다. 벼를 벤 논에는 게가 기어 다닙니다. 안줏거리가 이렇게 많은데 마침 체 장사가 지나갑니다. 막걸리를 걸러놓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야겠지요. 이러한 마음이 있으니 태평성세의 재상이 될 수 있었겠지요.

김윤안과 비슷한 시대 정홍명(鄭弘溟)도 따스한 마음을 그리워하였나 봅니다. ‘농가의 사계절(田家四時詞)’이라는 작품의 가을 노래에서, “매달린 박 꼭지 떨어지고 대추 볼 붉어지자, 가는 곳마다 거리에는 즐거운 풍년 이야기 넘쳐나네. 어린 며느리 맛난 밥을 고이 지어다가, 손수 소반에 들고 늙은 시아비께 권하네(懸瓠落체棗시紅, 到處街談樂歲풍. 小婦軟炊香稻飯, 手提sv勸衰翁)”라 하여 아름다운 풍속을 그려보였습니다. 집안 어른은 물론이고 이웃 노인과도 즐거움을 함께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세상이 아닐까요.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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