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작곡가 - 연주자 - 청중의 마음이 하나로 동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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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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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협연 수원시향 연주회 ★★★★☆

수원시향과 협연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수원시향과 협연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주지하다시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은 극도로 연주하기 어렵다. 단지 기술적인 측면 때문만이 아니다. 라흐마니노프라는 사람 자체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어려움도 있다. 말단 비대증으로 인해 발달한 왼손으로 한 옥타브 반을 수월하게 짚을 수 있었던 키 2m의 거인. 그는 그런 자신에 맞추어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작곡했다.

여성이거나 몸집이 작은 피아니스트들을 테크닉 문제 이전에 물리적 제한으로 옥죄는 이 난곡을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30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에서 자유자재로 요리해 감탄을 자아냈다. 그는 눈앞의 벽을 돌파하고 각성하는 데 열중해 청중을 안중에 두지 않는 연주자들과 달리 우리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자기의 영역에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도 아니었고, 반대로 친절하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었다. 청중과 연주자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를 완전히 개방해 작곡가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하나로 동기화했다.

그 덕분에 라흐마니노프가 흉중에 품고 있던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 참을 수 없는 우울과 거대한 환영이 출렁이는 음악의 능선을 따라 번갈아 고개를 내밀며 속 깊이 다가왔다. 느긋한 페이스의 1악장 전반부에서 군데군데 우아함까지 엿보였다가, 긴 ‘오시아’ 카덴차에 이르러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포화 직전까지 뜨겁게 타올랐다. 2악장과 3악장도 분방하고 아름다웠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오히려 기운이 나는 듯했다. 마지막 정점의 순간,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구름과 번개를 불러일으키는 손열음의 열 손가락에 환성을 질렀다. 지휘자 김대진과 함께 연주한 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2번과 쇼팽 연습곡 Op.10-3은 지나간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게 하는 앙코르였다.

2부 프로그램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수원시립교향악단 창단 30주년 기념 음악회라는 성격에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수년간 베토벤을 공연하고 녹음한 김대진과 수원시향은 인 템포로 시원시원하게 질주하며 역동적인 운동감을 강조했다. 소속되어있는 현악 주자들을 무대가 좁을세라 총동원하여 풍성한 음량을 추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운명의 모티브는 급속한 흐름을 타고 다친 자의 신음으로, 일어난 자의 고함으로, 아침을 여는 자의 구호로 퍼져나갔다. 때로 관현악 전체의 어택이 불분명하게 흐트러졌다는 것, 관이 현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는 것, 피콜로 등 목관 악기가 새된 소리를 냈다는 것은 거슬리는 점이었다.

이영진 음악칼럼니스트
#손열음#수원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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