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100m 한국신’ 서말구가 롯데에 스카우트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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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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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환수의 스포츠 구라젝트

1979년 11월 제33회 전국남녀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서말구 선수가 10초34로 100m 한국타이기록을 세우는 모습. 그는 1983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로 롯데 프로야구단에 스카우트됐다. 동아일보DB
1979년 11월 제33회 전국남녀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서말구 선수가 10초34로 100m 한국타이기록을 세우는 모습. 그는 1983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로 롯데 프로야구단에 스카우트됐다. 동아일보DB
프로야구 30년사의 독특한 결정 몇 가지를 꼽으면 롯데가 단연 으뜸이다. 롯데는 창단 2년째인 1983년 말 당시 육상 100m 한국 신기록(10초34) 보유자인 서말구를 선수 겸 트레이닝 코치로 스카우트했다. 야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은 사람을 선수로 영입한 것은 국내에선 유례가 없다. 서말구는 계약금 2000만 원, 연봉 1500만 원으로 특급 선수에 해당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롯데가 그에게 기대한 역할은 빠른 발을 이용한 대주자였다. 라이벌 구단인 해태의 김일권을 겨냥한 포석이었다.

○ 우사인 볼트가 축구를 한다면

그러나 도루가 발만 빠르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야구의 주루 플레이는 100m의 전력 질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육상은 총성을 듣고 스타트를 하지만 야구는 투수의 투구 동작을 훔치며 출발한다. 청각과 시각의 차이. 100m는 직선 주로를 달리기만 하면 되지만 도루는 뛰다가 엎어져야 한다. 앞으로뿐 아니라 옆으로도 달려야 한다.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야 할 경우도 있다. 결국 서말구는 한 번도 대주자로 기용되지 못한 채 3년간 트레이닝 코치만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똑같은 시도가 있었다. 1974년부터 2년간 105경기에 오로지 대주자로만 출장한 오클랜드의 허브 워싱턴. 단거리 선수 출신으로 ‘허리케인 허브’로 불렸던 그는 48번 도루를 시도해 31번 성공했다. 도루 성공률은 0.646으로 괜찮았지만 타격과 수비 없이 달리기만 하는 선수여서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최근 축구광인 ‘번개’ 우사인 볼트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싶다고 말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볼트가 축구를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격수가 되겠지만 공보다도 빨라 오프사이드가 속출할 것이란 게 세간의 농담 섞인 평가다.

롯데는 1991년에는 일반 팬을 단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선장 출신인 송정규 씨는 1990년 롯데의 문제점과 구단 운영 방안 등을 다룬 ‘롯데 자이언츠 필승전략 톱 시크리트’란 책을 발간했다. 기억을 더듬어 내용을 조금 발췌해 보자. ‘최동원을 개막전 선발로 내면 안 된다. 상대 팀이 다 예상을 하기 때문이다. 신인 투수를 내면 상대 팀이 저 투수가 마구라도 개발했나 하고 당황해할 것이다. 이때 최동원이 마무리로 나가 세이브를 거둔다. 그리고 다음 날 최동원이 선발로 등판하면 최동원은 1승 1세이브로 시즌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을 본 당시 롯데 신준호 부회장은 “바로 이 사람”이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송 단장은 취임 후 열정적으로 일했다. 외야에 실내 투수 훈련장을 설치했고, 연봉 고과 방식을 바꿨다. 미국인 투수코치 영입도 추진했다. 직원들의 느슨한 근무 태도를 바로잡는다며 출근 도장까지 찍게 했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독불장군이란 이미지를 낳았다. 결국 구단 직원은 물론이고 선수단과도 갈등이 불거지며 2년 만에 단장 직을 그만뒀다.

앞에서 프로야구의 ‘독특한 결정’이라고 한 것은 그 결정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롯데는 30년간 두 번 우승했는데 서말구 코치와 송정규 단장이 재직했던 1984년과 1992년이었다. 사령탑은 두 번 다 강병철 감독이었다. 이후 롯데는 역대 구단 중 가장 오랜 기간인 19년간 우승하지 못했다. 희한하게 오클랜드도 1974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허리케인 허브는 다저스와의 2차전에서 2-3으로 뒤진 9회 1사 1루에서 대주자로 나가 견제사하며 경기를 망쳤지만 오클랜드는 4승 1패로 왕좌를 차지했다.

○ 해설위원 허구연, 34세에 청보 감독

프로야구사의 독특한 결정을 몇 개 더 꼽아보자. 청보는 1985년 말 해설위원인 허구연 씨를 사령탑으로 전격 영입했다. 허 감독은 당시 만 34세로 그의 최연소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선 2001년 김병현의 소속팀인 애리조나가 해설위원 출신인 밥 브렌리 감독을 영입해 곧바로 우승컵까지 안았지만 청보는 여전히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1988년 말 롯데 최동원과 삼성 김시진이 주축이 된 초대형 트레이드는 양 팀 팬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연봉 협상 때마다 갈등을 일으켰고 선수협의회 결성의 주축이었던 최동원이 괘씸죄에 걸린 탓이었다.

1987년에는 롯데 성기영 감독이 3위를 하고도 잘렸다. 성적과 관계없이 선수단 갈등을 제대로 중재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 당시로선 중도 해임 최고 순위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지난해 8월 SK 김성근 감독이 직전 연도에 우승을 하고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서 깨졌다. SK는 김 감독을 퇴진시킨 뒤 이만수 수석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임명해 남은 시즌을 치렀다. SK는 김성근과 구단, 김성근과 이만수의 갈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내홍을 겪었다.

SK는 지난해 3위로 정규시즌을 마친 뒤 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꺾고 2위에 올랐다. 이만수 감독이 정식 취임한 올해는 선수들의 잦은 부상에 몇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오히려 정규시즌 순위를 2위로 한 단계 끌어올리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하지만 SK 팬들은 여전히 양분돼 있다. 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 감독을 잊지 못하는 팬들은 이 감독의 지도력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SK가 올해 잘한 것은 김 감독이 그동안 뿌려놓은 씨앗이라는 것. 이들은 SK가 올해 홈런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대신 예년에 비해 평균자책은 올라가고 도루는 적어진 것이 팀이 망가져 가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감독으로선 펄쩍 뛰고 싶을 정도로 억울한 일이다. 잘하면 김 감독 덕분이고, 못하면 자신 탓이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것인데 정규시즌 1위 삼성의 전력이 만만찮다. 우승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천운이 따라줘야 한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가 전혀 각본 없는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영웅과 악당이 잘 배합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미국 프로레슬링처럼 ‘야신’의 추종 세력들에게 이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에 패퇴해야 하는 ‘악당’인 셈이다. 김성근의 중도 해임에 대한 가치 판단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감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 난관을 잘 헤쳐 나가 SK 팬들을 통합할지 궁금하다. 올해 포스트시즌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다.

장환수 스포츠전문기자 zangpabo@donga.com
#서말구#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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