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신민아 화장 담당은 특수부대 출신男? 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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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녀-금남-금노의 벽 넘은 3인, 틀을 깼다 세상이 열렸다

“여자는 안 돼.” “에이, 남자가?” “거동도 불편할 텐데….”

금녀(禁女) 금남(禁男) 금로(禁老)의 고정관념을 깨고 꿈을 이룬 세 사람이 있다. 모터사이클 정비사에 도전한 할리데이비슨 여성 정비사 조유민 씨(33), 국내 최대 화장품업체 아모레퍼시픽의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성공한 이진수 씨(36), 백발의 나이에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으로 인생 2막에 도전한 이승화 씨(60). 남들의 시선은 거북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일에 대한 열정 덕분이다.

○ “저부터 찾는 고객 많아요”

할리데이비슨 정비사 조유민 씨. 채널A 제공
할리데이비슨 정비사 조유민 씨. 채널A 제공
화려한 매니큐어 대신 시커먼 기름때가 낀 손. 몸에선 향수 냄새 대신 휘발유 냄새가 진동한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정비센터(경기 용인시)의 막내 정비사 조유민 씨다.

어릴 때부터 인형보다 공구나 장난감이 좋았던 조 씨. 대학 전공도 기계공학을 택했다. 고급 모터사이클의 엔진과 차체가 내뿜는 남성다움에 빠져 전문 정비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벽은 높았다. 대부분의 모터사이클 회사는 정비사 모집 공고부터 ‘남자만 지원 가능’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다 2년 전 성별 제한을 두지 않은 할리데이비슨 정비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결과는 서류 탈락. 하지만 지난해 재도전했고 회사는 그의 집념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조 씨는 할리데이비슨의 국내 최초 여성 정비사가 됐다.

할리데이비슨의 주 고객은 남성이다. 게다가 스스로를 ‘남자 중의 남자’ ‘기계를 좀 아는 남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여자가 정비를 제대로 하겠어?”라는 편견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조 씨는 여성 특유의 꼼꼼함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한두 시간이면 끝낼 정비 차량 옆에서 밤을 새웠다. 정비할 곳은 엔진이지만 혹시나 다른 부분에 문제는 없을까 세심히 살폈다. 정비사 못지않은 눈썰미의 고객들은 조 씨의 실력을 금세 알아봤다. 이제 정비센터에 오면 조 씨부터 찾는 단골 고객이 생겼다.

○ 특수부대 출신… 게이라고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진수 씨. 채널A 제공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진수 씨. 채널A 제공
180cm가 넘는 키와 넓은 어깨, 구수한 사투리까지. 특수부대 출신 ‘경상도 사나이’ 이진수 씨는 국내 최대 화장품 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수석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의 출근 가방에 든 건 오색찬란한 화장품과 다양한 두께의 화장 브러시.

인터뷰 내내 그의 손동작은 허공에 화장을 하듯 우아했다. 원래 이 씨는 화장에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계기는 군 제대 후 우연히 찾아왔다. 함께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가 이 씨에게 메이크업 아카데미에 다닐 것을 권했다. 미술을 하던 누나의 영향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이 씨에게 잘 맞을 것 같다는 게 이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배우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놀라웠다. 그는 ‘여자보다 섬세하다’란 평을 들으며 고속 성장했다. “이 화장 진짜 저 남자가 했어?” 이 씨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화장해주는 남자’로 사는 게 쉽진 않았다. 식구들의 외면, 주변의 오해….

부모님은 몇 년 동안 아들의 직업을 부끄러워했다. 일부 시샘하는 사람들이 “게이가 분명하다”는 소문을 내는 바람에 곤욕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화장 후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고객들의 표정이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었다. 이 씨의 특기는 눈썹 화장. 여성들이 스스로 잘 다루지 못하는 눈썹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척도다. 매일 밤 수천 번씩 눈썹 화장을 연습했다. “눈썹부터 딱 그리는 순간 불신하던 표정이 싹 사라져요.” 이제 배우 신민아와 모델 구은애 같은 톱스타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간다.

○ 나이 예순의 분위기 메이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이승화 씨. 채널A 제공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생 이승화 씨. 채널A 제공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만 ‘패스트’하지 못했죠. 이젠 손자뻘 동료들을 제가 가르쳐요.”

점심시간이면 젊은 직장인과 학생들로 가득 차는 서울 서초동의 맥도날드 매장. 올해로 환갑이 된 이승화 씨의 일터다. 점포 사장이라고 해도 적지 않을 나이. 이 씨는 늦깎이 아르바이트생이다. 20년 넘게 근무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명예퇴직한 뒤 1년 전부터 이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국책연구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캐나다 여행 당시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일하는 백발의 노인을 보고 힘을 얻었다. 지금은 57세 부인도 같은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씨는 차에 탄 채 햄버거를 주문하고 받아가는 ‘드라이브 스루’ 코너를 맡고, 부인은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든다. 이 씨가 일하는 서초GS DT점 주홍식 사장은 “10대 아르바이트생들과도 쉽게 친해지고, 손님들에겐 항상 활짝 웃는 게 이 씨의 강점”이라며 치켜세웠다.

이 씨는 고군분투했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그만 혼자 느렸다. 손님이 수백 명씩 몰리는 점심시간은 전쟁터다. 음료를 뽑고 감자를 튀기고 주문을 받는 일이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감자를 튀기는 끓는 기름통에 손을 집어넣기도 했다. 입사 1년이 된 지금, 이 씨는 점포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아르바이트생을 지휘하는 ‘캡틴’이 됐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리면 현지 맥도날드 매장 매니저가 돼 서빙하고 싶어요.” 그에게 남은 마지막 꿈이다. 환한 웃음에 백발이 무색했다.

※관련 뉴스는 채널A 홈페이지(www.ichannela.com)에서 다시보기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채널A 영상] 장벽 허문 그들의 얼굴은 빛났다

김관 채널A 기자 kwan@donga.com
#금녀#금남#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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