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옥상엔 푸른 마당… 원룸 4개 오순도순… 저층은 상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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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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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변신 Season 2]<2>무지개떡 아파트

건축가 황두진이 서울 도심에 가상의 무지개떡 아파트 5개 동을 설계해 넣은 그림. 4개 동의 아파트 옥상에 정원을 조성해 도심에서도 큰돈 들이지 않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주거 업무 상업 공간이 층을 달리해 가며 한데 모여 있어 출퇴근 시간과 교통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제공
건축가 황두진이 서울 도심에 가상의 무지개떡 아파트 5개 동을 설계해 넣은 그림. 4개 동의 아파트 옥상에 정원을 조성해 도심에서도 큰돈 들이지 않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했다. 주거 업무 상업 공간이 층을 달리해 가며 한데 모여 있어 출퇴근 시간과 교통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제공
《 5년 전 히트상품 ‘한옥 아파트’를 선보였던 건축가 황두진. 그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을 분리해 놓으니 출퇴근 시간만 길어지는 것 아닌가?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으면 꼭 교외로 나가야 하나? 그가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게‘무지개떡 아파트’다.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똑같은 ‘시루떡’ 모양의 아파트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주거와 상업, 업무시설을 한데 모아 출퇴근 시간을 확 줄여놓은 환경 친화적 모델이다. 건물 옥상에 마당을 조성해 도심에서도 큰돈 들이지 않고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저층 주상복합아파트는 친숙하지만 저평가돼 온 ‘상가주택의 재발견’인 셈이다. “대세는 복합이다. 시루떡 가고 무지개떡 온다”고 주장하는 그가 가상의 선후배가 나누는 카톡 대화를 통해 무지개떡 아파트를 소개한다. 》
선배, 이사하셨다면서요?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도 아니라면서요?

어. 5층 건물인데 나는 4층에 살아. 1층에는 콜드드립 카페가 있는데 간단한 식사도 팔아서 난 이미 그 집 단골이야.

편하겠네요. 다른 층은요?

2층은 계단이 외부에 면해 있어 길에서 그냥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 거긴 디자인사무소가 들어와 있어. 그 위 두 개 층은 원룸이야. 한 층에 2개씩 4개야. 내 옆방은 자동차 잡지사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고, 아래층 사는 뿔테 안경 낀 여자는 어제 보니 길 건너편 건물 2층의 유치원 선생님이더군. 완전 동네사람이지.

선배 회사도 그 근처 아닌가요?

걸어서 한 5분 걸려. 큰 길 하나만 건너면.

가까운 데 모여 살고, 서로서로 사업하고, 자급자족하는 동네네요?

그런 게 좋아서 사람들이 여기로 온대. 나도 그랬고.

결국 상가주택 같은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엄마가 와서 보시고는 ‘얘, 너 왜 가게 위에 살 생각을 했니?’ 하시던데. 근데 그게 어때서? 1층 카페로 친구들 부르기도 좋잖아? 그리고 원래 1층엔 가게가 있어야지 집이 있으면 안 좋은 거 아냐? 감옥처럼 쇠창살 두르고.

집주인은 누군가요?

일찍 은퇴한 부부인데 건물 꼭대기에 사셔.

집주인이 옥탑방 고양이….

옥탑이 아니고 정식 5층이야. 꽤 넓은 마당도 있는. 처음부터 그렇게 지은 거래. 멀리 산도 보이고 내부는 아주 정갈하게 꾸며놨는데 무슨 한옥 같더라고. 도시 한복판의 집 같지 않았어. 마당일 열심히 해서 바질, 로즈메리 같은 것을 동네 식당에 쏠쏠히 내다 판다고 하시던데. 재미로 하시는 거겠지만.

집주인이 같은 건물에 살면 서로 피곤하지 않아요?

이 동네에 이런 건물이 많으니까 부동산중개소들이 건물 관리도 같이 해. 그리고 주변 몇몇 건물은 개발업자들이 지은 건데 특이하게도 분양 안 하고 임대만 한대.

왜요, 이전엔 모두 분양했잖아요?

지금은 분양해서 한 번에 파는 것보다 임대로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다나봐. 지은 사람이 계속 관리하니까 건물 상태도 더 나은 것 같고.

지하실도 있어요?

꽤 깊은 지하실이 있는데 거기 녹음실이 있어. 원 포인트 녹음 하시는 분이라고 하던데. 밤낮을 바꿔 사니까 마주칠 일은 별로 없지만 아래층 카페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어.

그 건물에 주차장은 없나요?

2대 세울 자리가 있는데 원래 이 건물 규모로는 5대분 정도가 필요해. 나머지 3대분 주차장은 근처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가 있더라고. 5대를 다 세우면 1층이 모두 주차장이 될 거 아냐? 그래서 요즘은 인근 공용주차장에 일정한 돈을 내면 법적 주차를 확보할 수 있어. 구청에서도 그걸 권장한대.

걷고 싶은 거리, 그런 건가요?

그렇지. 건물 1층이 죄다 주차장이 되는 걸 막자는 거겠지. 더 대단한 것은 이게 수익사업이라는 거야. 하루 종일 차를 세우진 않으니까 평상시엔 그냥 일반 주차장으로 영업을 해서 수익의 일부를 돌려준대. 외국에서 이야기하는 코업(co-op), 그런 건가봐.

무슨 동네가…실험장 같아요.

맞아,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시도가 많아. 그런데 이런 건물을 요즘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이름도 있어요? 저층주상복합 같은 건가?

이름이 재미있는데 ‘무지개떡 건물’ 혹은 ‘무지개떡 아파트’라고 한대. 말이 되지.

풉, 팰리스, 타워, 이런 거 아니고 떡요?

그러게, 층마다 용도가 다르잖아. 그럼 무지개떡의 반대는 뭐게?

반대? 전 층이 다 똑같은 거요?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잖아요. 그런 건 시루떡인가?

그렇지! 이제는 시루떡의 시대는 가고 무지개떡의 시대가 온다는 거야!

우아! 그런 건물들이 늘어나면 출퇴근 시간도 줄고 걸어 다니며 살 수 있어 좋겠네요.

그런 걸 직주(職住)근접이라고 하잖아. 이전에는 그렇게 살고 싶어도 불가능했는데 지금은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아.

미래는 번쩍번쩍하고 삐죽삐죽하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박하네요.

맞아, 나도 여기 와서 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어. 이렇게 사니까 에너지도 아끼고, 지구 환경에도 기여하는 것 같고.

흠…이건 괴짜 선배 하나 이사 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생각을 다 하고 온 건 아니고…. 하지만 교통비 아끼고, 출퇴근 시간 줄이고, 여기 살기로 한 것은 여러모로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아.

혹시 지금 가서 봐도 돼요?

진작 말하지…. 마침 1층에 동네 사람들과 모여 있으니까 바로 와.

와, 좋아요! 기념으로 무지개떡 사 갖고 갈게요∼.

‘무지개떡 건축’ ‘무지개떡 아파트’는 상표출원 중입니다.

※본보에 소개된 아파트 설계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 필자 명단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②조남호 솔토건축소장 ③황두진 황두진건축소장 ④김광수 이화여대 건축학부 교수 ⑤정현아 DIA건축소장 ⑥김찬중 THE_SYSTEM LAB 소장 ⑦안기현 이민수 Ani_스튜디오 공동소장 ⑧장윤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운생동 건축 대표 ⑨임재용 OCA건축소장 ⑩양수인 삶것(lifethings)소장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hwangdj@djharch.com
#아파트#무지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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