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적 이단아 김기덕 감독, 세계거장 우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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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초반 佛서 거리의 화가 할때 난생처음 영화 접하고 감독 꿈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金 “배우 - 스태프에 감사”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영화계 이단아가 한국 영화 전인미답의 길을 열었다.

김기덕 감독(52)이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가 세계 3대 영화제(베니스, 칸, 베를린)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32년 시작한 베니스 영화제는 세계 최고(最古) 영화제다.

주류 영화계와의 불화, 관객 및 사회와의 불화, 동료 영화인들과의 불화로 점철된 김 감독의 영화 이력과 생애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문제적인’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는 1995년 시나리오 ‘무단횡단’이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에 당선돼 영화계에 입문했다. 1996년 ‘악어’로 감독 데뷔해 ‘파란대문’(1998년) ‘섬’(2000년) ‘나쁜 남자’(2001년) 등을 선보였지만 평가는 항상 극과 극으로 갈렸다. 스스로 ‘반(半)추상 영화’라고 밝히는 그의 영화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상징적이고 회화적인 장면들을 엮어 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영상 DNA’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는 성매매 여성으로 설정한 여주인공에 대한 가학적 표현으로 “백해무익한 감독” “여성에 대한 극도로 착취적인 상상력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받았다. “기본기가 부족하다” “소아병적 자기 상처를 무한 재생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관객과의 불화도 이어졌다. 2004년 베니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잇달아 감독상을 수상해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관객은 그의 영화를 어렵게 여겼다. 2002년 개봉한 ‘나쁜 남자’의 관객 29만 명(서울 기준)이 김 감독 작품 중 최고 흥행기록이었다.
▼ 30대초반 佛서 거리의 화가 할때 난생처음 영화 접하고 감독 꿈꿔 ▼

金 “배우-스태프에 감사”

이른바 ‘주류’ 영화계와도 갈등 관계였다. 2006년에는 그가 연출한 ‘시간’이 스크린을 독점한 ‘괴물’ 때문에 상영관을 못 잡자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2008년 제자 장훈 감독이 대형 투자배급사와 계약하며 떠나고, ‘비몽’ 촬영 중 배우 이나영이 목을 매는 장면을 찍다 죽을 위험을 넘긴 일을 계기로 칩거에 들어갔다. 은둔 기간에 만든 자전적 영화 ‘아리랑’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을 수상했다. 이어 이번 수상으로 그는 영화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될 만한 극적 반전을 연출했다.

베니스 영화제 시상대에 오른 김 감독은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를 선택해 준 모든 이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한 뒤 민요 ‘아리랑’을 불렀다.

경북 봉화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김 감독은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 주변 공장에서 일했다. 당시 변압기와 항공장비를 만들고, 10대에 공장장이 되기도 했다.

학력이 모자라 방위 판정을 받은 뒤 친구의 고교 졸업증명서를 빌려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5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3년간 거리의 화가로 지냈다. 당시 ‘퐁네프의 연인들’ ‘양들의 침묵’ 등 32세 때 난생처음 본 영화들은 그에게 영화의 꿈을 꾸게 했다.

김 감독은 현재 경기 양평군 인근의 움막집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태양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이 집에서 그는 에스프레소 기계를 직접 만들어 커피를 뽑아 먹고, 화장실도 없어 텃밭을 대신 이용하며 지낸다.
김기덕 감독 약력·필모그래피

△1960년 - 경북 봉화 출생

△1990∼1993년 - 프랑스 유학, 서양화 작업

△1995년 - 시나리오 ‘무단횡단’, 영화진흥위원회 공모 당선

△1996년 - 연출 데뷔작 ‘악어’

△1997년 - ‘야생동물보호구역’

△1998년 - ‘파란 대문’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개막작

△2000년 -‘ 섬’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2001년 - ‘수취인불명’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 ‘나쁜 남자’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서울 관객 29만 명(최고 흥행작)

△2002년 - ‘해안선’ 부산영화제 개막작

△2003년 -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관객상

△2004년 - ‘사마리아’ 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은곰상)

― ‘빈집’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05년 - ‘활’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

△2006년 - ‘시간’ 판타스포르토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남우주연상(하정우)

△2007년 - ‘숨’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2008년 - ‘비몽’ ‘영화는 영화다’ 제작

△2011년 - ‘아리랑’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수상

― ‘아멘’ 연출, ‘풍산개’ 제작

△2012년 - ‘피에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채널A 영상] 마부에서 피에타까지…한국영화, 세계 속 ‘우뚝’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김기덕#피에타#베니스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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