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 걷어내고, 지금 여기 일상으로

  • Array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70,80년대 생 중국 신진작가전

① 중국의 신진작가 가오레이는 독수리가 시신을 먹으면 죽은 자가 환생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 티베트의 장례풍습을 소재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② ‘유희적 저항’전에 나온 셰링한의 회화적 영상작품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폐허가 된 중국의 공장을 배경으로 고래가 헤엄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선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③  ‘유희적 저항’전에 참여한 투훙타오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아미산을 즐겨 그린다. 거친 붓 터치와 섬세한 감수성이 결합된 그의 작품은 이상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① 중국의 신진작가 가오레이는 독수리가 시신을 먹으면 죽은 자가 환생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 티베트의 장례풍습을 소재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② ‘유희적 저항’전에 나온 셰링한의 회화적 영상작품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폐허가 된 중국의 공장을 배경으로 고래가 헤엄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선이 공간을 가로지른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③ ‘유희적 저항’전에 참여한 투훙타오는 무협지에 등장하는 아미산을 즐겨 그린다. 거친 붓 터치와 섬세한 감수성이 결합된 그의 작품은 이상적 산수화에서 벗어나 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바링허우(八零後)’는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표현이다. ‘한 자녀 정책’ 시대에 출생한 이들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혜택을 누리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바링허우의 사고방식이나 작품 성향은 이전 세대와 차별화된다.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겪은 2세대 작가들이 정치사회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3세대 작가들은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에 보다 관심을 기울인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과 종로구 삼청동의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각기 열리는 80년생 가오 레이의 ‘투사’(投射·8월 19일까지)전과 81년생 청란의 ‘침묵의 시네마’(沈默影院·8월 12일까지)전은 중국 현대미술 지형도의 변화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거대담론보다 개인적 관심과 미시적 서사를 철학적으로 접근한 설치와 영상 작업을 선보인 자리다. 02-541-5701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25일까지 열리는 ‘유희적 저항’전 역시 중국 현대미술을 이끌어갈 차세대 작가를 조명한다. 1970, 80년대 태어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은 오늘의 중국을 각기 다른 목소리로 표현한다. 10여 년간 중국 현대미술의 현장을 지켜봤으며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던 윤재갑 씨가 기획한 전시다. 02-720-1524

○ 거대 서사에서 일상의 서사로

얼굴을 마주보고 선 두 사람의 방독면이 끈으로 연결돼 있다. 현대인의 삶은 치열한 경쟁과 투쟁으로 점철돼 있으나 남의 생명을 끊으려 하면 내 생명도 위태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은 독수리가 공기를 잔뜩 채운 고무 침대에 놓인 방독면을 쪼고 있다. 새가 시신을 먹으면 영혼을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고 믿는 티베트 사람들의 장례풍속을 모티브로 삼아 삶과 죽음, 윤회사상을 이야기한다.

바링허우 세대에 속하는 가오 레이의 설치작품들이다. 그는 삶의 복잡 미묘한 아이러니에 관심을 두고 거대 서사가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4가지 다른 유형의 여성의 골반 조형물이 매달린 그네 설치작품도 그렇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작가는 ‘자신의 생명 자체가 인공적인 산물’이라는 아이러니를 표현했다.

아라리오 삼청에 선보인 청란의 3채널 영상 작품은 ‘죽느냐 사느냐’란 대사가 등장하는 ‘햄릿’이 소재다. 4명의 현대무용수가 즉흥적 몸짓으로 무대와 물속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작가는 “젊은이들은 성취를 급하게 생각하고 갈증을 느끼지만 나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뭔가 침착하고 안정된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 직설화법에서 간접화법으로

왕광이 쩡판즈 장샤오강 웨민쥔 등 2세대 작가들은 국가의 절대권력과 사회적 불안을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차이나 아방가르드’로 불렸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등장한 신진 작가들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이기 힘든 작업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사회 비판적 이야기도 직설적 화법이 아니라 간접 화법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1진’ 여고생처럼 젊은 여성이 면도날을 입속에 문 채 자전적 이야기를 펼치는 마추사의 영상작품. 자신의 유학을 위해 부모가 집을 팔았던 개인사를 통해 동세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유추하게 만든다. 폐허가 된 공장에서 고래가 유영하고 정체 모를 비행선이 등장하는 셰링한의 연필 그림 애니메이션은 불연속적 시간이란 주제를 파고든다.

윤재갑 씨는 “이데올로기적 저항이나 상업주의에 대한 저항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목격한 신진 작가들은 겉보기에 유약하고 유희적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회와 인간에 대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고 발언한다”고 설명한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미술#중국 신진작가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