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 “우리 사회는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는 사람이 많아 시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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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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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윤리형이상학’ 국내 첫 번역

《 이마누엘 칸트 말년의 명저인 ‘윤리형이상학’이 최근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됐다. ‘윤리형이상학’은 칸트의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두 책을 묶어 지칭하는 이름. ‘법이론…’은 칸트 법철학의 원론으로, 여기에 나오는 칸트의 국제법과 세계시민법 사상은 세계평화론의 근간을 이뤄 국제연맹(현 유엔)의 초석이 됐다. ‘덕이론…’은 ‘윤리형이상학 정초’ ‘실천이성비판’과 더불어 칸트 도덕철학 3부작을 이루는 저작으로 도덕을 실천할 때 부닥칠 수밖에 없는 ‘예의상의 비진리(거짓)를 거짓말로 볼 수 있는가’ 같은 실천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각각 자유의 법칙에 대한 외적(법)·내적(도덕)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것이며 칸트 철학체계 안에서의 중요성뿐 아니라 세계 정신사에 끼친 영향력이 작지 않은 저작이다. 》
백종현 서울대 교수는 “공리주의와 행복제일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에 칸트의 도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행복과 도덕이 충돌할 때 도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백종현 서울대 교수는 “공리주의와 행복제일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 사회에 칸트의 도덕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행복과 도덕이 충돌할 때 도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이들 책이 뒤늦게나마 번역될 수 있었던 것은 30년간 칸트 번역에 몰두해온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62) 덕택이다. 백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85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는 대우재단과 한국학술협의회의 도움으로 출판사 아카넷을 통해 ‘실천이성비판’(2002, 2009년 개정), ‘윤리형이상학 정초’(2005년), ‘순수이성비판 1·2’(2006년), ‘판단력비판’(2009년),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2011년) 등과 같은 칸트의 주요 저술을 일관되게 일본식 번역용어가 아닌 새 용어로 출간하고 있다.

윤리형이상학 출간을 기념해 만난 백 교수는 “중세가 신의 시대였고 근대는 인간의 능력을 믿는 시대였다고 한다면 인간을 도덕적 능력을 가진 존엄한 존재로 웅변한 칸트는 누구보다 근대의 정점에 있는 철학자였다”고 평가했다.

칸트의 시선으로 보면 현대인은 어떨까. 현대인은 행복과 유용성을 가져다주는 것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현대인은 지나치게 이득에 몰두한 나머지 이치에 부합한다는 합리(合理)를 이득에 부합한다는 합리(合利)로 이해하며 살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진리죠. 진리를 추구할 때는 상대는 물론이고 나 또한 손해를 볼 수도 있는데 현대인에게는 이런 인식이 부족합니다.”

백 교수는 “한국 사회에는 지금 공리주의적인 생각이 넘쳐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인간을 목적으로 삼아야지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칸트의 정신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한 사람을 죽여 여러 사람이 살 수 있다면, 한 사람을 죽게 만든 일을 ‘잘한 일’로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과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념 대립이 심해지는 한국 사회에 대해 그는 “자기가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을 바라는 자가 많으면 사회가 시끄러워지기 마련”이라며 “도덕적인 삶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공동체가 된다면 대부분의 분란은 없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행복을 위해 사투를 벌이다시피 하는 현 세태에 대해 백 교수는 “칸트는 인간적인 삶을 위해서는 감성적 만족인 행복보다 도덕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며 “개인이나 공동체가 행복제일주의에 빠지면, (예를 들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필리핀 사람은 불행해지듯 지금은 행복하지만 다음 세대는 불행해지는 일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백 교수는 한국 구성원들의 시야가 세계적이지 못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칸트처럼 인간을 온전한 인격체로 생각하며 사유를 전개하면 지구상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정도의 여건이 되는 나라라면 뉴스든 정책이든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등 세계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칸트가 인구 5만 명의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난 적이 없었지만 세계 평화를 구상했듯이 한국이나 한국인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칸트#윤리형이상학#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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