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동생은 훈련생도, 언니는 지도생도… “혼자 적응하라고 요령 안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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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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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도 감쪽같이 몰랐던 자매 스토리

후배 지도 담당인 명예부위원장과 예비생도의 신분이어서 4주간 알은 척도 못하고 지내야 했던 최지선(53기·위), 예원(56기) 자매. 인터뷰도 자매가 마주치지 않도록 22일 오전과 낮 시간에 따로 진행됐다. 대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후배 지도 담당인 명예부위원장과 예비생도의 신분이어서 4주간 알은 척도 못하고 지내야 했던 최지선(53기·위), 예원(56기) 자매. 인터뷰도 자매가 마주치지 않도록 22일 오전과 낮 시간에 따로 진행됐다. 대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 내 신세,”(조선 중기, 홍길동)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고, 명예부위원장 생도라 불러야 하는 이 내 신세.”(2012년 2월, 국군간호사관학교 예비생도)

나이도 엇비슷한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서러웠을까. 조선시대 홍길동의 한 서린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지만, 조심스럽게 예비생도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어쨌든 홍길동은 실재했는지 확인이 어렵지만, 예비생도는 지금 대전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주인공은 간호사관학교 56기 최예원 씨(18). 그가 그토록 ‘언니’라 부르고 싶었던 대상은 올해 4학년에 올라가는 53기 최지선 씨(21)다. 예상했겠지만 친자매다. 지선 씨는 명예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56기의 기초 군사훈련을 담당하는 지도생도에 포함됐다.

○ 부모님께 언니 ‘무관심’ 이르기도

자매는 예원 씨의 입소가 결정된 후 “친언니가 학교에 있다는 것을 동기들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합의했다. 모두들 힘들어하는 상황이 될 텐데, 괜한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지선 씨는 훈련 요령이나 생활 팁 같은 것을 단 한 가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요령으로 배워서 하기보다는 직접 몸으로 부딪쳐 익히는 게 동생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게 이유다.

동생도 호기롭게 언니의 방침을 받아들였지만 막상 힘든 훈련이 시작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리 약속을 했더라도 동생이 잘 적응은 하고 있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 언니가 매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엄격한 아빠’인 다른 11명의 지도생도들과 달리 명예위원장과 명예부위원장은 ‘따뜻한 엄마’ 역할을 맡는다. 예원 씨는 부모님께 쓴 편지에 “명예부위원장 생도께서는 다른 애들에게는 좋은 말을 그렇게 많이 해주면서 내 앞에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일러바치기도 했다.

지선 씨라고 해서 왜 신경이 쓰이지 않았겠나. 평소에는 일부러라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모든 일과가 끝나고 지도생도들 간 회의를 하면 맨 먼저 “예원이 오늘은 어땠어?”라고 물었다. 지도생도들도 그날 예원 씨가 뭘 잘못해서 어떻게 혼냈다는 걸 하나하나 지선 씨에게 보고했다.

훈련 2주차에 접어들었을 때쯤 예원 씨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데다 그것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지적을 받게 되자 자신감마저 떨어졌던 것. 매일 저녁 작성하는 수양록에 그러한 자신을 자책하는 글을 썼고, 지선 씨에게 곧바로 이 사실이 알려졌다. 훈육장교와의 상의 끝에 언니가 직접 면담하기보다는 명예위원장이 예원 씨를 만나 마음을 추슬러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선 씨는 대신 반창고가 든 상자에 노트를 찢어 쓴 편지를 넣어 예원 씨에게 전달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동생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원 씨는 “편지에 있던 ‘너는 충분히 버텨낼 수 있다’는 짧은 격려가 정말 큰 힘이 됐다”며 “언니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다시 언니를 이해하게 됐다”며 웃었다.

이후에도 지선, 예원 자매는 딱 한 번 대화를 나눴다. 발목이 좋지 않던 예원 씨가 진료실에 갔는데 마침 지선 씨가 후배들을 돌보고 있었다.

“(손을 들고) 예비생도 최예원! 명예부위원장 생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왼쪽 발목이 아픕니다.”

“(발목을 살펴보며) 여기가 아픈가? (아픈 곳을 누르며) 어떤가?”

“아픕니다.”

“(파스를 붙이며) 내일도 계속 아프면 다시 진료 받으러 온다. 알겠나?”

“예비생도 최예원! 알겠습니다!”

그게 다였다.

23일 예원 씨도 동기 84명과 함께 당당히 사관생도 선서를 했다. “진짜 수고했다. 아주 잘했다”고 말해주겠다던 언니는 자꾸 눈물이 나서 제대로 격려도 못해줬다고 한다.

“3년 전 제 생각이 나서 더 감격스러웠던 것 같아요. 잘해준 동생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모전여전(母傳女傳) 생도도 탄생

한편 올해는 모녀 사관생도도 나왔다. 기록은 확실하지 않지만 두 번째 사례로 알려졌다. 이영자(51·국간사 25기) 소유빈(21·56기) 모녀가 그들. 임관 후 15년간 군 생활을 하다 2000년 퇴직한 이 씨는 현재 우송정보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아이가 여러 가지 진로를 놓고 고민했는데, 처음에는 간호사관학교에 원서를 낸 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합격소식을 듣고 저도 대견했지만 남편이 훨씬 더 좋아했다”고 말했다.

훈육장교인 김은경 소령도 감회가 남다르다.

“이 교수님은 제가 2학년일 때 성인간호학을 가르쳐 주셨던 은사예요. 유빈이를 보는 순간 교수님과 너무 닮아서 놀랐는데, 생활신조까지 똑같더라고요. 교수님께서 한 번 문자를 주셨는데 제가 까마득한 후배인 걸 알면서도 존칭을 쓰셨어요. 아무리 후배이지만 저를 상대로서 존중한다는 뜻이었지요. 유빈이도 엄마와 같은 마음가짐이라면 훌륭한 간호장교가 될 겁니다.”

대전=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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