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Bucket List Tour]오!로라… 세상 언어로 표현못할 ‘천상의 광시곡’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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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cket List Tour | 동아일보―삼성카드 공동 기획

‘영롱한 별빛과 달빛을 맑은 아침이슬에 풀어 천사의 손으로 빚은 밤하늘의 향수’ 오로라가 밤 1시 캐나다의 북위 62도 옐로나이프
 근방 오로라빌리지 위 북쪽하늘을 물들이며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옐로나이프에서는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늦은 밤에 
오로라가 관측된다.
‘영롱한 별빛과 달빛을 맑은 아침이슬에 풀어 천사의 손으로 빚은 밤하늘의 향수’ 오로라가 밤 1시 캐나다의 북위 62도 옐로나이프 근방 오로라빌리지 위 북쪽하늘을 물들이며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옐로나이프에서는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늦은 밤에 오로라가 관측된다.
《별빛과 달빛을 영롱한 아침이슬에 풀어 천사의 손으로 빚은 밤하늘의 향수, 천사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밤하늘을 무대로 수놓는 요정들의 춤, 빛과 어둠을 뒤섞어 밤하늘에 흩뿌린 천상의 칵테일, 초자연의 신기루, 빛의 광시곡…. 세상에 이렇듯 지극무한의 찬사를 듣는 자연현상은 오로라,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걸 직접 본 나로서는 이걸로도 성에 차지 않는다. 좀 더 확실히 표현해 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절망할 뿐이다. 어떤 글과 사진으로도 묘사가 어려워서다. 오로라는 너무도 아름다워, 너무도 신기해, 너무도 사랑스러워 사람의 능력으로는 말과 글로 담아낼 수 없다. 그래서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태어나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면…. 그러니 누구든 여행의 버킷리스트 최우선 순위엔 당연히 ‘오로라’를 올리라고 말한다. 10년 전 처음 보았을 때나 지난해 12월 두 번째로 보았을 때나 이 생각엔 변함이 없으니 믿고 따라도 된다.》
오후 9시 40분. 캘거리(앨버타 주)발 에어캐나다 8221편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하얀 눈에 덮인 북위 62도 툰드라 대지의 옐로나이프공항(노스웨스트 준주)에 안착했다. 10년 전 첫 방문 때도 딱 이맘때였다. 다른 점이라면 에드먼턴(앨버타 주)에서 출발한 ‘퍼스트에어(First Air)’ 항공편이란 것과 카메라가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바뀐 것. 오로라에 대한 열망과 기대, 그리고 이곳 추위만큼은 변함없었다.

퍼스트란 단어는 캐나다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First Nation(선주민 부족)’을 뜻해서다. ‘선주민’은 15세기 유럽인 당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불러온―이다. 이들은 북극권(북위 66도 이북)과 거기 인접한 영구동토 툰드라 지대의 주인인 이누이트다. 그 땅은 현재 옐로나이프가 주도인 노스웨스트, 그 동편의 누나부트 등 두 개의 준주(準州). 그 면적은 남한의 110배나 되고 캐나다의 3분의 1이나 된다.

오로라빌리지의 썰매견 열 마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숲을 향해 눈밭을 질주하고 있다. 오로라투어 중 낮에 꽁꽁 언 호수에서 즐기는 겨울액티비티 가운데 하나다.
오로라빌리지의 썰매견 열 마리가 관광객을 태우고 숲을 향해 눈밭을 질주하고 있다. 오로라투어 중 낮에 꽁꽁 언 호수에서 즐기는 겨울액티비티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에스키모’라고 불러온 이들이 이누이트다. 그런데 이 호칭은 잘못됐다. 이들 언어로 에스키모는 ‘생고기를 먹는 자’이다. 유럽인이 붙인 비하 호칭이다. 이들의 생활 터전은 동토의 툰드라다. 동토란 ‘영구히 언 땅’. 지표면으로부터 4m 아래는 얼어붙어 파낼 수 없는 땅을 말한다. 그래서 나무도 키가 작다. 십수 년 돼 보여도 실제는 300년이 넘는다.

도착 당일 기온은 8도. 물론 영하―항시 영하여서 옐로나이프에서는 ‘영하’가 생략된다―이다. 착륙 안내방송에 스튜어디스가 긴 부츠부터 챙겼다. 나갈 때 보니 털모자 달린 거위털 파카까지 입는다. 얼마나 추운지, 자연이 얼마나 훼손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게 있다. ‘뇌조’다. 겨울이면 갈색 깃털을 순백의 보호색으로 바꾸는 특별한 새로 발에도 흰털이 나 발목을 따뜻하게 덮는다. 일본 저팬알프스 산맥의 깊은 산중에도 있지만 그걸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런데 여기선 비둘기 격이다. 사람도 무서워하지 않고 눈밭에 흔하다.

옐로나이프에서 오로라관광이 시작된 건 1991년으로 고객은 90%가 일본인. 10년 전엔 한 해 8000명을 헤아렸다. 그동안 줄긴 했어도 대세는 여전하다. 그날 내가 탄 비행기에도 13명이나 됐다. 예정된 옐로나이프 취재 일정은 3박. 사흘이면 오로라 관측 확률 95%. 그런데도 조바심은 가시지 않았다. 흐리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허탕을 쳐서인데 그래서 오로라 관측은 피곤해도 도착 즉시 개시된다.

옐로나이프 주택가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뇌조. 갈색 깃털이 한겨울이면 이렇듯 순백으로 바뀌고 발등까지 덮는다.
옐로나이프 주택가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뇌조. 갈색 깃털이 한겨울이면 이렇듯 순백으로 바뀌고 발등까지 덮는다.
호텔 객실에 들어서니 침대에 방한장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털모자 달린 두툼한 거위털 파카에 장갑, 겹쳐 신는 두 겹 방한부츠에 목도리를 겸한 스키마스크까지. 모두 오로라투어 운영사인 ‘오로라 빌리지’가 제공한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한밤, 빙판호수에서 서너 시간씩 버티려면 이것도 부족하다. 이렇게 갖춰도 발이 시리고 오한이 들 때가 있다.

오후 11시 반. 버스에 올라 오로라 빌리지로 향했다. 30분 후. 옐로나이프 북동편 오로라 호수에 도착했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엔 수십 명이 의자에 앉아 말없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호반엔 크고 작은 티피(삼각뿔 형태의 선주민 전통가옥으로, 둘러 세운 장대 15개에 캔버스 천을 두른 텐트) 7개가 불을 밝힌 채 서 있었고 주변에 건물 4채도 보였다.

늑대처럼 우는 개 수십 마리의 울음소리가 호수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썰매견의 견사다. 나를 안내한 박수진 씨의 말. “선주민들 말로는 개들이 저렇게 울면 오로라가 나타난다고 해요.” 일본 유학 중 취업해 여기 왔다는 그녀는 오로라 빌리지의 유일한 한국인 가이드다.

따뜻한 실내엔 수프와 빵, 핫초콜릿과 커피가 마련돼 있었다. 난로를 켜둔 티피도 짬짬이 몸을 녹일 휴게실이다. 호수 빙판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설치했다. 하늘엔 달이 떠있었다. 거의 꽉 찬 달에서 쏟아지는 교교한 달빛 덕에 호수에선 전등이 필요 없었다. 밤하늘엔 별도 총총 빛났다. 북위 62도 하늘의 별자리는 38도의 서울과 확연히 달랐다. 그 수도 수천 배는 됐다. 이런 밤풍경이라면 설사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 그토록 아름다웠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오후 4시반 옐로나이프의 다운타운. 외출 시 두꺼운 외투와 모자, 장갑, 방한화는 필수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진 오후 4시반 옐로나이프의 다운타운. 외출 시 두꺼운 외투와 모자, 장갑, 방한화는 필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기온은 영하 28도까지 뚝 떨어졌다. 그래도 춥지 않았다. 방한복의 위력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오로라에 대한 기대감이 추위까지 몰아낸 것 같았다. 그때 난데없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오로라가 출현한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북편 하늘 나지막이 뿌연 구름 같은 것이 어른거렸다. 오로라였다. 시작은 늘 이렇다. 이러다가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날은 곧바로 빛 구름으로 발전했다. 그 색은 연두와 초록. 옅어지는가 싶더니 진하게 빛을 더하며 하늘로 높이 피어올랐다. 그러면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오로라댄싱이다. 오로라가 춤추는 동안은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아서다. 댄싱은 5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오전 3시까지 오로라는 대여섯 차례 더 출현했다. 첫날밤은 물론이고 이튿날, 그리고 마지막 밤에도 오로라는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 옐로나이프의 깊고 추운 밤은 이렇게 흥분과 행복 속에 피곤한 줄 모르고 지나갔다.

이틀째 아침. 10시쯤 브런치(아침 겸 점심)로 식사를 마친 뒤 시내투어에 나섰다. 10년 새 옐로나이프도 많이 변했다. 타운 중심엔 높은 건물―그래봐야 10층 이하―도 많이 보였다. 슈퍼마켓도 대형으로 바뀌었다. 주민 수도 2000명 늘어 2만 명. 안 변한 것도 있었다. 스쿨버스를 이용한 관광, 현재 기온을 숫자로 보여주는 프랭클린 애비뉴의 거리 전광판, 북극곰 모양의 자동차번호판, 고철로 변한 시내 콘 금광의 타워, 다이아몬드 더스트(추운 지방에서 겨울 오전에 볼 수 있는 대기 현상으로 땅에 쌓인 눈의 결정이 아침 햇볕에 데워진 공기에 실려 공중부양하며 반사시킨 햇빛으로 반짝거리는 것), 변함없는 강추위와 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가는 주민의 밝은 표정….

옐로나이프에 서양인이 당도한 건 1770년의 일이다. 선주민으로부터 여우모피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는데 옐로나이프란 이름은 그때 붙여졌다. 선주민의 농기구가 구리여서다. 다른 설도 있다. 그건 금과 관련 있다. 이곳은 1935년 골드러시로 시작된 붐타운으로 금광 두 개(1935∼1993년)가 있었다. 초기 금광에선 다이너마이트 분말상자를 뜯을 때 불꽃이 튀는 것을 막느라 구리칼(옐로나이프)을 썼다고 한다.

옐로나이프는 그레이트슬레이브 호수 주변의 타운 8개 중 하나다. 이 호수는 거대(480×190km)하다. 세계에서 9번째, 캐나다에서 2번째며 수심(614m)은 북미 최고다. 11월부터 5월까지 동결(두께 1.2∼1.8m)하는데 그러면 그 위로 ‘아이스로드(얼음길)’가 나고 거길 24t 대형 트레일러가 쌩쌩 오간다. 호수엔 수상가옥도 있다. 한겨울엔 빙상가옥으로 변한다. 금광은 1993년 폐쇄됐다. 이제 남은 유일한 산업은 310km 동북방의 에타키 다이아몬드 광산뿐. 주민(2만 명)도 40%를 차지하는 공무원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젊은 광산 노동자다. 그래서 주민 평균 연령은 34.7세이고 25%가 18세 이하다. 봄에 임신부가 부쩍 늘어나는 건 이곳만의 특별한 현상이다. 밤이 스무 시간을 넘나드는 북위 62도 옐로나이프의 긴 겨울에 대다수 주민이 30대인 만큼 당연한 결과다.

옐로나이프=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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