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싹부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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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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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월 차세대 신진 예술가 발굴 무대 활짝

6일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의 소극장 스페이스 111. 연극 ‘죽음과 소녀’가 시작됐다. 여배우가 빈 의자를 향해 격렬한 감정을 담은 대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뒤에서 마이크를 든 남자 배우는 때로 ‘계속해, 더 올려’라고 응원을 하더니 제3자처럼 상황을 해설하기도 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명확히 드러났다. 여주인공은 15년 전 칠레의 군사독재 시절 눈을 가린 채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차가 고장 난 남편을 집으로 데려다준 의사의 목소리를 듣고서 여인은 이 의사를 고문의 가해자로 확신한 뒤 결박해 신문하고 있었던 것. 내용보다는 세 명의 배우가 기존 무대 문법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점이 신선했다. 가상의 배우는 빈 의자에 묶여 있고, 제3의 배우가 무대를 휘저으며 가상의 배우의 대사를 대신한다. 배우들은 육성으로 말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대사는 마이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공연 시간은 단 60분. ‘완성작’은 아니다. 두산아트센터가 차세대 예술가와 작품 발굴을 목적으로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지원 프로그램 ‘두산아트랩’의 쇼케이스 공연이다.

1, 2월은 연극계가 쉬어가며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 그 대신 싹이 보이는 차세대 신진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무대가 활발하다. 대표적 프로그램인 ‘두산아트랩’은 올해 상반기 ‘죽음과 소녀’를 시작으로 2월 18일까지 다섯 편의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두산아트센터 박찬종 차장은 “가능성 있는 작가나 단체에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무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완성인 이들 작품이 완성작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이날 ‘죽음과 소녀’엔 호평이 이어졌다. 뮤지컬 전문지 더 뮤지컬의 박병성 편집장은 “대단한 연출 감각”이라고 창찬했다. 지난해 초연해 흥행에도 성공한 뮤지컬 ‘모비딕’도 아트랩을 통해 투자자를 만나 완성작으로 이어진 경우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17, 19, 21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차세대안무가클래스 쇼케이스’ 무대를 진행한다. 9개 작품을 세 작품씩 묶어 공연하는 이 무대도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세 차례의 공연은 모두 매진됐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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