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에너지 넘치는 광대들, 배꼽은 못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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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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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극 ‘변두리 극장’ ★★★☆

개성 강한 광대들 덕분에 공연이 생기발랄하다. 왼쪽부터 게으른 광대(김철영), 딴죽 거는 광대(홍민수), 어설픈 광대(오동석). 게릴라극장 제공
개성 강한 광대들 덕분에 공연이 생기발랄하다. 왼쪽부터 게으른 광대(김철영), 딴죽 거는 광대(홍민수), 어설픈 광대(오동석). 게릴라극장 제공
얼굴을 하얗게 분칠한 8명의 광대가 등장해 단막극 7개를 이어 보여주는 연극 ‘변두리 극장’은 형식에서는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닮았다. 하지만 요즘 대중의 웃음 코드를 자극하기엔 세련미와 순발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풍자와 해학이 풍부한 희극도 아니다.

이처럼 어중간해 보이는 작품이지만 원작자가 독일의 카를 발렌틴(1882∼1948)임을 알게 되면 다르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는 대중적인 코미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변두리 극장’을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 예술가가 당시 세태를 어떻게 바라봤는가를 알 수 있다.

소시민 출신인 발렌틴은 권력자와 자본가의 문화와 태도를 풍자하고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상류층의 고급문화를 욕망하는, 무식하고 게으른 소시민의 이중적 모습도 함께 웃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외국어대 정민영 교수가 번역한 그의 단막극 22편 가운데 7편을 추려내 각색한 이번 공연에도 발렌틴의 예술관이 잘 녹아 있다.

첫 에피소드는 공짜 연극표가 생겨 공연장을 가려는 부부의 이야기. 부부는 아들에게 공연 때문에 집을 비운다는 쪽지를 남기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상황을 명확하게 다 담아 문구를 쓰려다 보니 자꾸 길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런 쪽지가 돼버렸다. ‘우리는 극장에 갈 수 있게 되었고, 가고 싶고, 가려고 하고 있는데 네가 걱정이 되고, 걱정은 되지만 가야 할 것 같다.’ 부부가 아름다운 표현을 쓰면서 부부싸움을 시작하지만 답답해하다가 결국 합의하에 막말을 주고받는다는 에피소드는 서민들의 교양에 대한 허영심을 꼬집는다.

제본공이 책을 주문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용건을 전하려고 하는데 ‘나는 담당자가 아니다’며 계속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돌리는 바람에 같은 말을 무한 반복한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자동응답 전화가 일반화돼 담당자와 통화하기 어려운 요즘 세태를 떠올리게 한다.

배우들이 공연 중 트럼펫, 드럼, 피아노 같은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몸을 사용하는 연기가 많아 무대가 역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 22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1만 5000∼3만 원.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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