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고의 안중근 의사를 연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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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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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 뮤지컬 ‘영웅’서 정성화와 더블캐스팅

주연을 빛내는 조연을 해왔던 조휘가  ‘영웅’에서 처음으로 대형 뮤지컬 주연을 맡는다.
주연을 빛내는 조연을 해왔던 조휘가 ‘영웅’에서 처음으로 대형 뮤지컬 주연을 맡는다.
“역대 최고의 안중근 의사를 연기하겠습니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한 남자가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당당하게 걸어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뮤지컬 배우 조휘(31·본명 조성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카로운 눈매, 콧수염 모양까지. 생김새가 딱 안중근이다. 질문을 하면 거침없이 바로바로 답이 튀어나온다. 한 가지를 물으면 열 개의 답을 내놓는다. 중저음의 목소리는 믿음을 준다. 2009년 뮤지컬 ‘돈주앙’으로 더뮤지컬어워즈 남자신인상 후보에 오르며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그동안 주연을 빛내는 조연을 해왔던 그가 이번에는 대형 뮤지컬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는다.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에서다.

“학창시절 연극이 최고”
-언제 배우에 대한 꿈을 꾸었나.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대부분 학원을 많이 다니잖아요. 저도 여기저기 많은 학원에 다녔는데, 매번 조금 다니다가 그만두기 일쑤였죠. 학원 공부보다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 좋았고, 제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매년 열리는 청소년예술제의 연극에 참가했어요. 그렇지만 부모님께서는 오랜 세월 교직에 계셨던 외할아버지처럼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대학은 사범대학에 진학했었죠. 그러나 대학입학 후에도 학교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을 더 열심이었어요. 그때 체계적으로 연기 공부를 했어요.”

-뮤지컬 ‘블루사이공’에는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되었나.
“노래도 좋아하고 특히 뮤지컬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블루사이공’ 오디션에 합격이 되어버렸어요. 그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부족한 연기력 때문에 호된 꾸지람을 받았어요. 그 이후에는 보는 오디션마다 떨어져서 한계가 왔나 싶었죠.”


뮤지컬 ‘돈주앙’은 내 인생의 전환 작품이다”
-더뮤지컬어워즈 남자신인상 후보에도 올랐네요.
“2009년 군 복무 마치고 뮤지컬 ‘돈주앙’으로 복귀했습니다. 돈주앙의 친구 돈까를로스역이었어요.내정된 돈까를로스 배우가 갑자기 펑크가 나는 바람에 제가 들어가게 된 거죠. 행운이다 싶어서 죽도록 연습했죠. 그렇게 첫 공연을 마치고 났더니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걸 느꼈어요. 여기저기 언론에서 단독 인터뷰도 하고, 단숨에 무명에서 기대주로 바뀌었죠. 거기에 신인상 후보까지. 수상은 못했지만 배우로서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돈주앙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어요.”

그는 2009년에 뮤지컬 ‘돈주앙’, ‘클레오파트라’, ‘영웅’을 2010년에는 ‘몬테크리스토’, ‘왕세자 실종사건’, 또 2011년에는 ‘The chorus : 오이디푸스’,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등 대형 뮤지컬 배역을 따내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갔다.

“조도선과의 3년”
- 뮤지컬 ‘영웅’과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영웅’은 2009년 안중근 의사 거사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안중근 의사 역은 모든 배우들이 탐을 내는 배역이죠. 그래서 저도 주인공 안중근 역할 오디션을 봤어요. 그런데 주인공이 아닌 ‘조도선’ 역에 합격을 했어요. 실력은 문제없지만 무대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라네요.
말 없고 진중한 함경도 남자인 ‘조도선’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날 것처럼 보이지만, 한없이 여린 사람이에요. 배역 비중은 작았지만 충실하게 연기했어요. 제작사에서 저의 그 점을 높이 평가해 줘서 ‘영웅’의 재공연때마다 조도선 역할을 해왔어요. 주연배우의 ‘커버’ 역할도 같이 하면서요. ‘커버’라는 것은 대형뮤지컬에서 주연 배우의 갑작스런 사고 등을 대비해 대역을 할 사람을 미리 연습시켜두는 것입니다. 그 커버 역할을 병행하면서 묵묵히 안중근을 꿈꿔왔죠.”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 일곱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한 남자가 ‘코레야 우라(대한 만세)’를 외치며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뤼순 감옥에 투옥되어 있던 144일 동안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외쳤던 그는, 이듬해 3월 26일 서른두 해의 짧지만 뜨거운 삶을 마감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2009년 10월 26일, 그의 삶을 재조명한 뮤지컬 ‘영웅’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역사적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했다는 것뿐 아니라 안중근의 내면적인 고뇌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웅’은 초연당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 각종 뮤지컬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올 8월에는 'HERO'라는 작품명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한민국 1세대 뮤지컬 제작자 윤호진(63)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는 “티켓 매진이 되더라도 적자가 예상되는 공연이지만, 제작비 250만 달러(약 28억 원)를 과감히 투입하겠다.”며 “손해가 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어려움 속에서 올라간 브로드웨이 공연은 뉴욕타임스로부터 “2시간 40분 공연 시간에 34곡의 노래는 과다하고, 대사 전달력 또한 부족했다. 그리고 선(안중근)과 악(이토 히로부미)으로 극명히 나눠져 관객들의 선택권을 박탈했다.” 는 냉혹한 평가를 받는데 그쳤다.

브로드웨이 공연 꿈만 같았어요.”
-뉴욕 공연 에피소드가 있나요.
“제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출국 전날까지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러나 설렘도 잠시였고, 첫 공연 때 미국인들의 문화적인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연기했던 게 아쉬웠어요. 극 중 조도선이 적을 향해 총을 쏘기 전에 아리랑을 부르면서 춤추는 장면이 문제가 됐죠. 이 대목은 극의 긴장감을 완화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예요. 한국 관객들은 아리랑을 함께 따라 부르고 춤도 추면서 소통하는 반면, 현지 관객들 반응은 썰렁했어요. 함께 출연했던 배우와 긴급 수정해서 호응을 얻어내기는 했지만, 지금까지의 내 연기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정 관객층(20~30대 여성)에게만 녹아들어 편협한 연기를 해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배우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잡아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형 뮤지컬 첫 주연, 가슴 벅찼습니다.”
-‘영웅’ 주연에 배우 정성화와 더블캐스팅 됐네요.
“재공연이 확정되자 윤호진 대표께 안중근 역 오디션을 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3년간 조도선과 커버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갈고 닦은 실력을 검증 받고 싶었어요. 자신감도 충만했죠. 그때부터 일상을 안중근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수염도 기르고 휴대폰 배경화면에 안중근 사진을 넣고 다니며 배역을 철저히 연습했어요. 오디션 당일, 윤 대표가 수염을 기른 제 모습을 보시더니 “이 게 네 진짜 수염이냐?” 며 직접 당겨보시더라고요. 결국 연출과 음악감독 등 전체 스텝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정성화 선배와 더블 캐스팅이 됐습니다. 주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중압감이 컸지만, 나만의 안중근을 만들어 내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를 주연으로 선발한 윤호진 대표는 “지혜롭고 인자한 덕장의 면모가 잘 나타나는 정성화의 캐릭터와 또 다른 느낌”이라며 “날카롭고 영민한 투사와 저격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휘’표 안중근은 어떨까요
“초연부터 안중근의 거사를 돕는 동지 ‘조도선’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거쳐 갔던 안중근 역할을 한 선배들의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안중근 역할을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지켜봐왔죠. 선배들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된 안중근의 집합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안중근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날아온 대단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앞에선 한 없이 작은 아들이었고요. ‘안중근 종결자’가 되어, 관객들에게 실제 그를 만나게 해주고 싶습니다.”

뮤지컬 ‘영웅’은 오는 6일부터 2012년 1월 7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이후 1월 14일부터 2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글·사진=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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