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클라라 주미 강이 가수될 뻔한 사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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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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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주미 강의 현재 악기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인디애나 콩쿠르에서 우승해 4년간 대여 받았다. 4년 후에는 차기 우승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싸구려 바이올린의 행방이 궁금했다.

“후배 빌려줬어요. 후배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거든요. 지금 악기가 없는데 혹시 빌려줄 수 있냐고. 빌려주었는데 한 달 후 다시 연락이 왔어요. 팔 생각이 없냐고요. ‘없다’고 했어요. 저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악기니까. 하지만 쓰고 싶을 때까지 쓰라고 했죠. 당분간 전 다른 걸 쓸 거니까. 사실 악기 관리도 스트레스거든요. 악기는 놀면 상태가 안 좋아져요. 누군가 계속 연주를 하고 있으면 도움이 되죠.”

“악기도 주인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겠다”라고 하니 “그럼요”했다.
한정호 과장이 “나중에 돌아왔는데 주인을 몰라보면 어떻게 하냐”고 농담을 했다.
“그럼 진짜 때려야지. 어딜 몰라 봐!”
세 사람이 모두 얼굴을 펴고 “우하하” 웃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연주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내 모습을 발견해 소름이 돋는 순간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비슷한 얘기를 예전에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씨에게 직접 들은 기억이 있다. 한창 연주에 몰두하고 있으면, 자신이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허공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느낄 때가 있다는 얘기였다.

클라라 주미 강은 “어머나, 나 지금 소름 돋았어요”하며 입을 열었다.
“친구들하고 가끔 얘기해요. 도대체 어떨 때가 무대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일까. 왜 가슴은 따뜻하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고 하잖아요. 스스로 한 발짝 떨어져서 봐야 한다는 얘기들을 하곤 해요. 너무 빠져버리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는 말들이 많죠.”

클라라 주미 강의 얘기는 계속됐다.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언제 이런 해석을 했었지?’하는 순간이 있어요. 저도 당연히 미리 정해놓죠. 여긴 크게 하고, 작게 하고. 그렇게 정해놨는데, 연주장에서 갑자기 내가 … 나를 뭔가가 인도하는 거죠. 이 음을 약간 강조하기로 했는데, 다른 음까지 강조하면서, 내가 봐도 더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거죠. 그럴 땐 과연 이게 내 힘인가 싶어요.”

크리스천인 그녀는 “하나님이실 것”이라고 했다.
이런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을 때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 중에서도 2악장.
그녀는 “베토벤은 너무 파고들면 답이 없어요”라고 했다.

○ 세계적인 연주자는 외롭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고독함’을 견뎌야 한다는 얘기와도 같다. 말이 좋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회”이지, 알고 보면 세계 공항, 호텔 및 공연장 순례나 다를 게 없다.

“우리들이 연예인을 봐도 그 화려함만 보지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그리 힘들어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올해는 힘들더라고요.”

본인 말로 “이틀마다 잠자리가 바뀌었다”고 했다. 출장이 잦은 기자로서도 ‘확실히 힘들겠구나’싶다.

“우린 안 좋은 게, 혼자 다니잖아요. 현장에 도착하면 스태프가 도와주지만 그건 호텔에 들어가기 전까지 만이죠. 방에 들어가는 순간 혼자인 거예요. 지역마다 좀 다르긴 한데, 연주자는 잘 안 건드려요. 방해될까봐. 외롭죠.”

한 곳에 많이 머물러 봐야 사흘이다. 이틀 리허설하고 연주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떠난다.
“나중에는, 내가 거울을 잡고 얘기를 해야 하나 싶어지더라고요.”
클라라 주미 강은 유머감각도 있다.

그래도 연주를 할 때면 너무나 행복하다. 아무리 지치고 짜증이 나고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무대에 올라가 몇 음을 켜면 ‘이래서 내가 이걸 하는구나’하는 마음이 든다.
“무대에서의 40분 때문에 우리는 참 많은 걸 희생하고 사는 거죠.” 하더니 혼잣말을 하듯 작게 말했다.
“연애도 하고 싶은데”.

클라라 주미 강이 정말로 싫어하는 장소는 공항.
악기 때문에 불안하다. 비행기에 오르면 짐칸에 바이올린을 넣어두지만, 마음이 불안해 비행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녀가 들고 다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우리나라 돈으로 30억원이 넘는 명기 중의 명기인 것이다.

“그래서 공항에 갈 때는 굉장히 평범하게 차리고 가요. 비싼 악기 티를 내면 안 되니까. 추리닝에 후드티 분위기? 학생처럼 옷을 입죠. 화장도 잘 안 하는 편이고. 다들 학생으로 봐요. 하하!”

클라라 주미 강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으로 이 인터뷰 기사를 마칠까 한다.

클라라 주미 강은 대학 시절 가수 제의를 받은 일이 있다. 직접 작곡한 곡들로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던 것이다.
피아노 반주에 노래를 불렀다. 화음도 넣었다. 1절은 한국어, 2절은 영어 하는 식으로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녹음했다.

“2006년이었나 … 콩쿠르 나가서 한창 신나게 떨어지고, 신나게 바이올린 안 풀릴 때였죠. 아빠가 ‘넌 바이올린 안 맞겠구나’하던 타이밍이었어요.”

이 데모 테이프를 들은 미국의 프로듀서가 “가수해 볼 생각없냐”고 연락을 해왔다. 보통 프로듀서도 아닌, 셀렌 디온의 프로듀서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팝송이나 가요를 절대 못 듣게 했던(클래식만 들을 수 있었다) 보수적인 아버지가 “미국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너무나도 서러웠단다.

“저럴 분이 아닌데. 내가 지금 얼마나 ‘루저’처럼 보였으면 미국으로 보내려고 저러시나 싶었죠. 오기가 팍 솟더라고요. 내가 진짜 보여준다. 아빠 진짜 내가 보여준다, 하고 안 했죠.”

11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실내관현악단과 ‘사계’를 협연한 클라라 주미 강은 12월 22일에 독주회를 연다. ‘클라라 주미 강의 바이올린 무한독주’라는 독특한 타이틀이 걸려 있다. 새로운 앨범도 나온다.

그나저나 기사를 다 써놓고, 제목을 못 정해 전전긍긍이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한구석에서 외로운 마음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기자도 바이올리니스트처럼 꽤 고독한 직업인지 모른다.
(끝)

사진제공|빈체로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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